궁극의 취향! [맛]

person in orange shirt holding aluminum rectangular container
  • 제목: 맛
  • 저자: 뮈리엘 바르바리Muriel Barbery
  • 번역: 홍서연
  • 출판사: 민음사
  • 출간일: 2023년 12월 1일
  • 분량, 무게, 크기: 192쪽 | 269g | 128*188mm(B6)

Une Gourmandise

책의 프랑스어 원제는 “Une Gourmandise”입니다. 간단히 검색해보면, “gourmandise”는 프랑스어 동사로, 좋은 음식을 넘칠 정도로 먹는 (eat good food, to excess) 것을 뜻한다고 합니다. [고슴도치의 우아함]을 쓴 뮈리엘 바르바리의 이 책이 여러 부분에서 ‘과하다’는 느낌이 든다면 아마 그것은 제목에서부터 암시되었던 것이 아닌가 합니다. 한편, 책의 영어판 제목은 (위에 첨부한 이미지에서 보듯) “Gourmet Rhapsody”입니다. ‘식도락가의 랩소디’라는 제목 역시 거의 의식에 흐름처럼 흘러가는 이 책의 내용을 암시하기에는 충분한 것 같습니다.

이에 비해, 한국어판의 제목은 다소 간명한 “맛”이라는 한 단어로 이뤄집니다. 프랑스어 원본이나 영어 번역본처럼 책의 흐름을 알 수는 없지만, 내용을 기대하게 하는 제목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다소 경쾌한 표지 디자인과 귀여운(?) 서체 디자인에 속아 넘어가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면 책의 흐름이 다소 난삽하다고 느꼈을지도 모르겠고, 무척 사랑스럽고 공감할 수 밖에 없었던 [고슴도치의 우아함](예스 24 링크)의 주인공에 비해 당최 공감할 수 없는 주인공 탓에 당황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누군가에겐 다소 당황스러운 결말까지…

르클레르크에서 파는 슈케트는 이렇게 생겼습니다. 2018년도의 사진이긴 하지만, 한 팩에 2.5유로!
https://world.openfoodfacts.org/product/2000000083186/chouquettes-leclerc

그래서, 이 책의 요체는 무엇일까요? 역시나, (모든 훌륭한 책이 그러하듯) 책의 시작 부분에 단서가 버젓이 놓여 있습니다.

…나는 그 맛이 내 삶 전체의 첫 번째이자 궁극적인 진리라른 것, 그리고 그 후로 내가 말 못하게 닫어걸어 버린 마음의 열쇠를 쥐고 있다는 것을 안다. 나는 그것이 내 어린 시절 또는 사춘기 시절의 맛이라는 것을 안다. 미식을 입에 올리고자 하는 내 욕망과 야망에 앞서 존재하는 근본적이고 놀라운 음식이라는 것을 안다. 잊어버린 맛, 내 가장 깊은 곳에 둥지 튼 맛, 내 삶의 황혼에서 말하고 생각해야 하는 단 하나의 진리인 맛. 나는 찾지만 찾지 못한다.

– 12쪽

한편, 프랑스어를 출발어로 해서 쓰인 이 프랑스어 픽션의 음식과 그 맛에 대한 묘사는 분명 요란스러운 면이 있습니다. 예컨대:

현기증 나는 경탄이었다. 내 치아의 방벽을 넘어 들어온 것은 고체도 아니고 물도 아닌, 그 둘 사이의 매개적인 물질로서 고체의 편에서는 무(無)에 저항하는 견고성을 간직하고 물의 편에서는 기적 같은 유동성과 부드러움을 빌려 온 물질이었다.

– 78쪽

네, 이 현기증 나는 경탄을 유발한 물질은 바로 회sushi입니다. (여담이지만 작가는 잠시 일본 교토에 살았던 적이 있다고 합니다. 일본에 대한 유럽 사람의 자포니즘japonism인 걸까요…!?) 저와 함께 아이를 기르고 있는 파트너에게 위 구절을 읽어주었더니, “요리왕 비룡” 같다고 한 마디를 툭 던지더군요.

요리왕 비룡 명장면 – 전설의 누룽지탕

어쨌거나, 화려한 묘사가 난무하는 이 소설을 읽고서 우리가 나누어보았으면 하는 이야기는 바로 ‘맛’과 어쩌면 그것을 둘러싼 ‘기억’ 입니다.

책에 관한 전반적 이야기와 더불어, 다음과 같은 생각 거리들로 이야기를 나눠보았으면 합니다.

  • 당신은 ‘맛’을 즐기는 사람인가요? 혹은, 당신이 끌려하는 맛, 음식, 혹은 그것을 둘러싼 환경은 어떤 것인가요?
  • 당신에게는 뿌리 깊이 각인된, 종종 돌아가고 싶고 찾아보기도 하는 맛이 있나요? 있다면, 그것은 어떤 것인가요?
  • 내가 오늘 맛본 것들은 무엇이었나요? 그것들은 어떤 맛이었나요?

독서노트로부터 발췌

어쨌든 파인다이닝 테이블에서 입가심하라고 내주는 소르베도 배스킨라빈스 레인보우 샤베트도 편의점 냉동고에서 찾을 수 있는 망고 아이스바도 카테고리는 같다. 빈도가 주는 행복을 생각하면 접근성이 좋은, 다시 말해 구하는 데 시간과 비용이 적게 드는 아이템이야말로 그 사람이 좋아하고 즐기는 맛을 제공한다고 볼 수 있겠다. 한 번 먹고도 잊지 못하는 맛 또는 그럭저럭 먹을 만하지만 언제라도 원한다면 취할 수 있는 맛이 대결한다면 어느 쪽을 손들어 주겠는가. 그래서 고급 식료품점이 아닌 슈퍼에서 밀봉된 봉지에 들어간 채로 눅눅해진 슈케트를 찾는 마음을 알 것 같았다.

– ㄱOO

좀 다른 이야기긴 하나, ‘맛’이라는 미각이란 주제가 던져졌을 때 문득 떠오른 건 ‘후각’에 대한 경험이었다. (…) 가장 인상적인 건 딥디크의 ‘롬브르단로’였다. 비 온 뒤의 장미향이라고 그렇게 인기가 있다 했는데, 막상 뿌려보니 내가 맡은 향은 폭우 뒤 장미꽃잎이 마구 떨어진 질척이는 진흙탕을 걷는 느낌이었다. 실망을 하던 차 당시 왔던 주변 친구에게 샘플 이야기를 하며 한번 뿌려보았는데, 신기하게도 친구의 몸에서는 막 비가 그친 뒤 생생하게 꽃잎이 살아나는 싱그러운 장미와 줄기, 이파리 향이 났다. (…) 미각은 후각보다 더 경험 관리가 잘 되어 있다. 우리는 ‘먹어도 되는’ 음식들을 주로 먹는다. (…) 또한 맛의 세계는 단지 미각에만 의존한 것은 아닌 것 같다. 같은 음식을 맛본다 하더라도 식감에 따라, 먹는 환경(분위기 등)에 따라, 나의 심리, 얼마나 허기가 져 있고 갈증이 나는지에 따라 달리 느껴질 것이기 때문이다. 

– OㅇO

그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조합은 “초코파이와 콜라”였다. 듣기만 해도 당뇨가 오는 것 같은 조합이고, 제대하고는 한번도 먹지 않았지만 당시에는 가히 천상의 맛이었다. 당분 섭취가 안되는 식단과 극한의 환경에 주어진 신체, 그 콜라보가 당에 대한 갈망을 극대화한 것이다. (…) 하지만 책의 끝 부분에서 주인공이 생을 마감하면 먹은 슈케트는 공감이 되는 부분이 많았다. 그 슈케트는 고급 빵집에서 만든 것이 아닌 슈퍼마켓에서 만든 것. 희귀하고 값비싼 것이 맛있는 편이긴 하지만 때때로 생각나는 흔하고 저렴한 음식들이 강렬하게 생각이 날 수도 있는 것이다.

– OㅈO

사실은 맛이라는 게 취향의 영역일 수 있을까라는 근본적인 질문부터 스스로에게 해봤다. 선호하는 맛이라는 게 그 사람의 태어난 나라, 지역, 경험해 본 문화, 모험을 즐기는 지 등등 다양한 것들이 복합적으로 섞여서 선호하는 것이 생기는데 선호=취향이라고 할 수 있을까? (…)

만약 나에게 48시간이 남았다면 나는 무엇을 먹고싶을까? 모임에서 이 질문에 대해 다같이 이야기해봐도 좋을 것 같다.

그리고 강조되는 부분을 고딕체로 강조했는데 왜 그부분만 강조했는지 사실 이해가 되질 않았다. 프랑스어를 몰라서 그런건가 싶긴 하지만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느꼈는지 궁금하다.

– ㅇOO

ㅇOO님의 이야기: 감자탕

이 메뉴에 대한 나의 첫 기억은 초등학교 4학년쯤인 것 같다.

그 때는 할머니가 손녀를 피아니스트로 만들고 싶어서 집착하던 시절이라 삼촌들의 결혼식 때마다 나는 피아노 앞에 앉았다. 할머니는 내 연주를 좋아했던 것보단 친척들에게 자랑하고 싶었던 것으로 보였지만, 삼촌들도 크게 거절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아 결혼식 입장할 때의 피아노반주는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거나 표현은 안했지만 조카딸을 사랑하는 마음이었던 것 같다.

막내삼촌은 그 당시 어린 내가 생각하기에도 유난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약혼식과 결혼식을 모두 진행했었다. 나는 막내삼촌의 결혼식에서도 새하얀 삼익 업라이트피아노 앞에 앉아있었다. 약혼식 때도 느꼈지만 결혼식에서 본 신부는 내가 봤던 20대 여성 중에 가장 예쁜사람이었다. 큰 눈에 화려하게 생긴영화배우 같았던 그녀와 가족이 된다는 것에 나는 묘한 자부심이 생기기도 했다.

당시 그들의 신혼집은 우리 집에서 가깝지도 멀지도 않았는데 , 내가 다니던 성당 바로 옆의 작은 빌라 1층이라 성당가는 날이면 나와 동생을 초대해주시곤 하셨다.

그 때마다 해준 메뉴가 바로 감자탕이다. 나중에 내가 그녀의 나이가 훌쩍넘어 만들어 본 감자탕은 손이 정말 많이 가는 요리였다. (역시 사먹어야 한다) 돼지뼈는 싸지만 잡내를 잡으려면 손질이 오래걸리며 감자를 따로 삶고 시래기까지 준비하다보면 시간이 꽤 걸린다. 그에 비해 플레이팅은 보잘 것 없다.

기억나는 그녀의 감자탕은 감자가 무척 컸고 무척 싱거웠다. 23살을 나이에 무슨 음식을 해봤겠나. 지금와서 생각하니 그녀는 무슨 마음으로 어린 애들에게 감자탕을 대접했을까 싶다. 그렇게 몇 년을 그녀의 감자탕을 먹으며 자랐다.

그 뒤로 나는 그녀를 잃어버렸다. 그리고 감자탕도 잊고 살았다. 그녀와 나는 더이상 가족의 울타리로 엮이지 못하게 되었다. 이제 나도 다 컸으니까 숙모가 해주던 감자탕과 비슷한 집을 발견했다고 다음에 거기 감자탕에 소주 일잔 하자고 하고 싶은데 연락을 할 수가 없다. 내가 사는 동네에 간이 약하고 큰 감자가 4개나 들어가는 말간 감자탕집에 갈때면 가끔 속으로 그녀의 안부를 물으며 건배를 청한다.

그런 관점에서 또다른 주제인 맛 혹은 음식에 얽힌 이야기를 미슐랭 3스타에 방문해본 경험으로 해보고자 한다. 싱가포르에 갔을 때 프랑스 식 미슐랭 3스타인 “Les Amis”를 다녀왔다. 한끼에 50만원 정도 하는 말도 안되는 가격을 자랑하고, 물 한 병에 2만원을 받는 (그렇지만 전체 가격에 비하면 저렴한) 무서운 곳이기도 했다. 하지만 맛에 대해 평을 하라 그런다면 그렇게 높은 평가를 주기는 어렵다. 가격을 맞추기 위한 캐비어와 트러플로 가득했다. 평소에 먹을 일 없을 것 같은 이 두 재료가 거의 모든 요리에 걸쳐 섞여있어 과장 약간 섞어 평생 먹을 캐비어와 트러플이 담겨있었다. 비싼 재료가 과연 나한테도 맛있는 것일까? 이 책에서도 마지막에 슈퍼마켓에서 파는 슈케트를 찾았듯 내 기억 속 가장 맛있는 재료는 아니었다. 먹으면서도 아까워서 먹는다는 생각을 한 메뉴도 있었다. 시작부터 나오는 버터와 올리브유는 배를 가득 채워 뒤에 나오는 음식들을 보기 싫게 만들었다. (메인 메뉴가 나오기 전 20분 정도 딜레이시켜달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비싼 재료, 오래된 요리사의 요리보다는, 한 점의 맛있는 삼겹살이 먹고 싶은 그런 느낌이었다.

– OㅅO

“맛에는 사람과 공간에 대한 기억이 섞여있다.”

군데군데 맛에 대한 인상적인 구절이 있었지만, 기억나는 것은 역시 마지막의 슈케트였다. 얼마 전 홍진경이 죽기 전 마지막으로 먹고 싶은 음식을 광어회와 소주라고 답하는 것을 봤는데 그와 유사했다. 질문이 인상적이어서 친구들과 저녁을 먹으며 “과연 우리는 어떨까? 무슨 음식이 좋을까? 어떤 술이 좋을까?”로 이야기를 나눴었다. 죽기 전 마지막으로 먹고 싶은 음식이라면 무겁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그런 면에서 회 종류가 적절해 보인다.

– OㅅO

OㅅO님의 이야기: 회 그리고 치즈

죽기 전 마지막으로 먹고 싶은 음식이라면 무겁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그런 면에서 회 종류가 적절해 보인다.

광어보다는 한치 회의 쫀득쫀득 붙는 맛과 산미가 적당히 있는 소비뇽 블랑, 샤도네이같은 기본 화이트 와인 한잔- 이면 적당하지 않나 싶다. 특별히 좋아해서 찾아다니는 음식은 김치만두, 집에서 제일 많이 해 먹는 음식은 간편해서 오일 파스타지만- 죽기 전 먹을 음식이라면 요리보다는 재료 자체로 먹고 싶다. 뭔가 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제철인 채소를 구워서 적당히 어울리는 와인, 막걸리랑 먹는 것도 좋겠다. 그마저도 누가 같이 술을 먹어줄 사람이 있어야 와인이든 뭐든 먹지, 혼자라면 술은 먹고 싶지 않다. 다시 생각해 보니까 그냥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을 것 같다. 다 취소하고 물만 먹는 것으로.

갑자기 치즈 관련 이야기가 떠올랐는데,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이야기이다. 이 영화는 18세기 프랑스 어느 외딴섬의 저택을 배경으로 한다. 화가 마리안느가 이 저택의 딸 엘로이즈의 초상화를 그리기 위해 섬에 도착하는데 이 과정에서 화첩이 물에 빠져 버린다. 이를 건지기 위해 마리안느는 바다에 뛰어든다. 덕분에 옷이 다 젖은 채로 도착한 마리안느가 기진맥진한 상태로 벽난로 앞에 옷을 벗어 말리고, 희미한 촛불만 켜져 있는 공간에서 치즈와 빵을 먹는 장면이 있다. 그것을 보면서 무척 허기가 질 것 같은데 치즈와 빵이라니, 젖은 음식이 들어가야 배가 좀 찼다는 생각이 드는 나와는 태생적으로 참 다른 위를 가졌구나 싶었다. 그런데 몇 년 새에 치즈를 많이 먹어버릇해서 저렇게 있다 해도 지금이라면 괜찮을 것 같다. 돌아보면 음식과 관련된 취향은 나이가 들면서 반경을 점차 넓혀간다. 커피, 위스키, 가지, 고수 등 어렸을 땐 좋아하지 않았던 것들을 지금은 곧잘 먹는다.

그리고 결국엔 이 비평가가 찾아낸 단 하나의 진리의 맛은 공장에서 만든 슈퍼마켓의 슈케트였다.

하지만 슈케트로 표현했으나 어릴 적 마음의 평온이 있는 시절의 허기진 어느 순간에 먹었던 것이 슈케트였을 뿐이지 슈케트가 아닌 다른 무언가였다면 그 다른 무언가가 진리의 맛을 대체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즉 진리의 맛이란 “그 어떠한 것의 개입없이 오로지 내 자신이 즐기고 원하는 그 무언가”이며 이 비평가에겐 그것이 슈케트 였던 것이다.

죽기 전에서야 진리의 맛을 찾아냈고 자신의 삶은 그 진리의 맛을 잊고 그에 반대되는 방황하는 삶을 살았다고 고백한다.

“신, 가공하지 않은 전적인 쾌락. 우리 자신의 핵으로부터 출발하여 우리 자신의 즐거움에만 관계되며 마찬가지로 거기로 귀착되는 것. 신, 다시 말해 본래적인 욕망과 순수한 쾌락의 극치 속에서 우리가 완전히 우리 자신인, 우리 내부의 신비로운 지역. 우리 환상 가장 깊숙이 자리 잡은, 진정한 나 자신만이 일으켜 세울 수 있는 중심점인 슈케트는 나를 살게 하고 존재하게 하는 힘의 승천이였다. 평생에 걸쳐 슈케트에 관해 쓸 수도 있었겠지만 나는 평생에 걸쳐 그것에 반대해서 썼다. 그토록 오랜 방황 끝에 나는 죽음의 시간에 이르러서야 마침내 슈케트를 다시 발견한다.”

이 책의 마지막 부분인 위 문장이 철학적인 개념을 담아내고 있는 것 같지만 내겐 좀 어려우면서 와닿지 않는 부분인 것 같다.

– OㅇO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던 시기에 누군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인지에 대해 물었던 적이 있었다. 예전에는 이 질문에 더 쉽게 대답을 했었던 것 같았는데, 유독 그 날은 쉬이 답을 할 수 없었다. 책과 같이 엄청난 해설이 덧붙여져야 할 것 같다는 압박이었을까. 아님 이 사람이 이 대답을 통해 나를 평가할 것 같다라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그 날 나의 대답은 ‘김밥’이었다. 한참을 생각해서 내 놓은 답이 김밥이라니. 물어봤던 친구도 상당히 허탈해 했고, 나 역시도 진짜? 김밥이라고? 하며 여러번 자문했었다. 물론 일주일을 한가지 음식만 먹을 수 있다고 묻는다면 김밥이라고 말 할 것이긴하다.

나름대로는 유명하다는 레스토랑, 맛있다는 음식 등등을 찾아다니는 것을 당연하다 생각하고 즐기며 있었는데, 정작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에 대한 답이 김밥이라니. 

– Oㅇ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