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 세 사진의 촬영 날짜는 2017년 5월 7일입니다. 트레바리 ‘미술아냥’ 첫 모임이 있었던 날이죠.
그리고… 아래 사진들의 촬영 날짜는 5월 6일입니다.


제목에 ‘이것은’이 들어간 책 세 권을 나란히 찍고, 미세먼지 분포도를 캡처해둔 걸 보니 봄철 미세먼지가 이슈였던 기억이 어렴풋이 나는 듯도 합니다.
가장 첫 모임은 지금은 사라진, ‘트레바리 압구정 아지트’에서 진행되었어요. 당시 트레바리는 압구정역 인근의 어느 건물 한 층 & 지하에 세를 들어 있었습니다.
그때 모임에선 이런 이야기들이 오갔습니다. (로그인 필요한 트레바리 모임 페이지 링크: ‘미술아냥’ 2017년 5월: https://trevari.co.kr/meetings/show?clubID=242&order=1)
미술아냥 모임 다음날 이런 사진들이 남아있습니다.



당시 몇 차례 광주MBC의 ‘아트아시아’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되었던 덕분인데요. (촬영장소가 바로 ‘아시아문화전당’내 라이브러리였습니다.) 이 모든 게 지금은 조금 까마득하기도 하고, 흐릿한 기억입니다.
시간을 빨리감기로 전진시켜, 2019년 7월. 1년에 두 번 가량 ‘트레바리 클럽장 모임’이 열리던 시기의 기록입니다.
- “노트 – 2019년 상반기 트레바리 클럽장 모임” https://www.jaeyongpark.net/updates/archives/1272
Q. 클럽장/멤버의 성비 비대칭 문제에 대한 인지와 이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은…? (당장 클럽장 모임만 해도 남녀 성비의 비대칭이 확연했습니다.)
A. 같은 질문이 2년 전 클럽장 모임에서도 제기된 바 있음. 그러나, ‘팔고 싶은 물건’과 ‘팔리는 물건’에 괴리가 있는 상황도 없다고는 할 수 없다. 젠더 이슈를 다루는 클럽이 오래 운영 중이기도 하지만, 성비 문제에 대한 전반적 개선은 천천히 이뤄질 것이라 봄.
그리고 ‘미술아냥’은 자체적으로 스스로를 갱신했습니다. 반갑게 인사 나누고 지내던 미술계 동료인 송고은 큐레이터를 이 모임에 초대하며, 더 흥미로운 모임이 된 겁니다.
아래 사진은 2021년 10월 첫 일요일, 루마니아 티미쇼아라에서의 사진입니다.




코로나 와중에, 해외 출장 중엔 온라인 모임으로도 ‘한 달에 한 번’은 이어졌던 것인데요. 그리하여… 우리는 오늘(2025년 8월 3일) 100번째 모임을 맞이합니다.
독서 노트들
현대미술이 이전의 미술이 가지고 있었던 공예적 특성에서 자유로워 짐으로서 확장성과 가능성을 키워냈지만 대신 현대미술이라는 개념이 가진 정체성 불안이 작가의 정체성 불안에 더 주목하게 된 것은 아닐까?
– OㅇO
시대마다 달리 해석하여 유형의 무언가가 ‘미술’일 수도, 아닐수도 있다는 이 상황을 나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어차피 모르잖아요.’라는 말이 무색하게, ‘알 수는 있는거야?’
– ㅂOO
“그래서 미술이란 무엇인가?”
작가는 미술작품이 전시하거나 교환됨으로써 그 의미와 가치를 얻는다고 했는데, 전시나 교환을 원치 않는 작품들은 가치가 없다는 것인가? 가끔 작가가 자신의 사후에는 자신의 작품을 없애달라는 요청을 하기도 하는데 작가의 ‘자유의지’로 제작되었으나 ‘자유의지’에 따라 전시나 교환을 하지 않게 되었거나, ‘자유의지’에 반하여 전시나 교환하게 되었다면, 그 각각의 경우의 미술작품에 대한 평가가 가능할까? 가능하다면 그 의미와 가치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 ㅈOO
After Postmodernism
21세기 초의 미술은 인공지능의 발전과 연결지어 이해해야 한다. 21세기의 전반기 동안 미술가들은 근본적으로 새롭고 더 나은 현대세계를 창조하기 위해 자동생성과 관련된 새로운 기술들ㅡ에이전틱 AI, 자율주행, 로보틱스, 확장현실XR 등ㅡ을 사용하고 싶어했다. ‘새로운 시대’에 대한 관심과 혁명적인 문화변동은 대상의 발전과 무관한 것이 아니었다. (p206 변형)
진짜들authentics의 경계가 모호해지며 사라질 시대에서 대상objective의 실재와 존재에 관한 미술언어 탐구.
– ㅇOO (놀러가기)
“100번째 모임에 200번째 독후감”
그러나 이런 개념론적인 것을 다 떠나서 현대미술은 묘하게 사람을 자극시키는 흥미로운 구석이 있다. 이 책만 봐도 그렇다. 미술책에 보통 이런저런 작품 사진이 실리기 마련이지만 나름 이론서임에도 불구하고 사진이 이렇게 많은 책은 처음 본 것 같다. 순간 내가 도록을 읽고 있는건가 하는 착각이 들정도로 사진이 많았는데, 대신 그만큼 메시지가 명료하고 강렬하게 다가온다. 이런 서술방식 자체가 현대미술 그 자체 같고 저자가 이런 부분을 의도하고 구성한게 아닌가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현대미술의 미술사적 개념을 되짚어가며 작품을 감상하는 것도 의미 있겠지만 그와 별개로 현대미술 특유의 충격적 자극을 우선 있는 그대로 부딪쳐보고 만끽하는 것도 동시대 미술을 누리는 관객의 바람직한 자세가 아닐까 하는 사족을 달아본다.
– ㅂOO
미술가가 미술작품을 창조한다해도 그 자체로서는 가치의 완성이 아니고, 미술의 여러제도를 통해서 비로소 현대세계 안에서 의미를 갖는다고 한다. 즉, 이렇게 제도등을 통해 새롭게 ‘본다’ 는 것이다. 그리하여 과거에는 미술이 아닌 것이 오늘날 우리의 ’선입견의 지평‘으로 미술으로 바라보게 된다. 마치1980년대 여성들이 자기표현수단으로서는 ‘직접적’ 이라고 여겨지는 회화가 아닌 ‘사진’을 더 많이 선택하여 비난에서 약간씩은 비켜나가고자 했던 것 처럼 말이다. 미술에대해 바라보는 그 시대의 전체적인 시각에서 벗어날수 없는 것이 미술의 현실임을 말하는 것처럼.
– ㅇOO
나는 이제 무언가를 예술이라고 부를 때, 그것이 어떤 경로로 그렇게 불리게 되었는지, 누가 그 명명을 가능하게 했는지, 그리고 그것이 우리 사회와 문화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함께 생각한다. 예술은 고정된 실체라기보다, 우리가 그것을 믿고 경험하는 방식 속에서 살아 움직인다. 더 이상 이것은 미술이다라는 선언이 절대적일 수 없음을, 그리고 그 선언을 가능하게 하는 맥락을 살피는 일이 예술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임을, 최근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던 이러한 깨달음들이 이번 책을 통해 더욱 선명해질 수 있었다.
– ㅈOO
‘앞으로는 어떤 미술이 주요한 장르로 떠오를까’라는 궁금증에서 출발해, 과거를 알면 미래가 보인다는 말처럼 미술의 흐름을 되짚어보면 앞으로의 예술도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따라가기조차 버거운 속도로 변화하는 기술과 가치 속에서, 예술의 미래를 예측하는 일이 얼마나 막연한지도 함께 느꼈다. 그렇기에 현대 미술에서는 독창성보다 ‘새로움’이 더 중요한 가치로 여겨진다는 저자의 말에 깊이 공감했다. 특히 ‘예술’이라는 단어조차 18세기 서구에서야 비로소 정립되었다는 사실은,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미술의 정의 역시 시대의 산물임을 깨닫게 해주었고, 그로 인해 막연한 답답함이나 한계로 느껴졌던 부분들이 조금은 해소되는 기분이 들었다.
– ㄱOO
메리 앤 스타니스제프스키가 쓰고 한국 작가 박이소가 번역한 ‘이것은 미술이 아니다’는 도발적인 제목만큼이나 강렬한 주장을 펼치는 책입니다. 저자는 우리가 ‘미술’이라고 생각하는 많은 것들이 실은 특정 시대의 정치, 종교, 경제적 맥락 속에서 만들어진 ‘제도’의 산물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미켈란젤로의 프레스코화나 고대 비너스상이 원래부터 ‘미술’이었던 것이 아니라, 후대에 이르러 특정한 믿음과 체제 속에서 미술로 규정되었다는 것입니다.
– ㅇOO
결국 질문은 하나로 모인다. 예술과 비예술의 경계는 누가 정하는가? 어쩌면 답은 “모두가 조금씩”일지 모른다. 작가의 선언, 제도의 승인, 관객의 해석, 비평의 담론, 시간의 관성 등- 마치 여러 요소에 별점을 매기듯이 어떤 건 높고 어떤 요소는 낮을지언정 예술은 이 모든 요소를 가지고 있다. 아니 ‘예술’로서 오래 살아남은 것들은 이런 요소를 높은 점수로 가지고 있더라.
앞으로 작품 앞에 설 때마다 “이건 예술이네, 아니네”를 속단하기보다는, ‘이걸 예술로 만든 조건은 무엇이지?’ 하고 한 발 물러서 보려 한다.
– 최도하 (파트너)
가장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대표적인 사조로 언급되는 인상주의는 과연 단순히 ‘명화’로만 말할 수 있을까. 인상주의만 하더라도 당시에는 기성 질서에 반기를 든 시도였다. 그렇기에 우리가 비교적 쉽게 받아들이는 ‘명화’ 또한 동시간대에 그들이 치열하게 찾아보고 긴장하며 탄생한 결과물이다. 지금 이 순간에 탄생하는 동시대 미술이 어렵게 느껴진다면, 그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계 자체가 혼란스럽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 ㅇOO
하지만 이번 책을 읽고 나서 그런 불안이 조금은 가라앉았다. 예술에 불변하는 기준은 없다는 사실을 다시 떠올리게 되었고, 무엇을 보자마자 그것이 예술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려 하기보다는, 그것이 어떤 과정을 통해 예술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는지를 생각해보는 것이 더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품을 ‘해석해야 할 정답이 있는 대상’으로 여기기보다는, 내가 주체가 되어 스스로 생각을 시작하게 하는 ‘계기’로 받아들이는 태도가 더 자유롭고 의미 있을지도 모른다.
– ㅇOO
미술사의 수 많은 예술가들이 대중의 문을 두드렸음에도 대중과 깊게 관계맺지 못하고 표면적인 관계만 맺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대중의 입장에선 예술이 없어도 하루를 살아내는데 큰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중략) 순수예술이 더 나은 가치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걸까? 거기엔 어떤 선민의식이 있었던건 아닐까? 몇몇에게 그것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일지도 모르겠다.
프란시스 알리스의 얼음 포퍼먼스와 구라사와 아키라의 이키루는 둘다 삶과 노동의 덧없음을 이야기 했고, 로리 앤더슨과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은 사회비판을 노래했다.
순수예술과 대중예술은 무엇이 더 나은것도 모자른것도 아닌 그저 질문의 농도와 접근방식 그리고 표현의 방식이 다른 것 뿐이라 생각한다.
– ODO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