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 자료: 큐레이터의 글쓰기 (서울시립미술관 시민큐레이터 프로그램)

2020년 7월 1일, 서울시립미술관 시민큐레이터 교육 프로그램에서 ‘온라인 생중계’로 진행한 글쓰기 수업 (원래는 좀 더 워크숍에 가까운 형태를 기대했지만, 코로나 19로 인해 몇 차례 연기 끝에 유튜브 중계로 전환되었음) 자료. 강의노트를 조금 가공하여 공유합니다.

또 다른 기회를 통해 수정, 확장, 보완할 수 있기를 기대하며.


강의 진행 순서

  1. 강연/워크숍의 목적에 대한 짧은 소개
  2. 강사 소개
  3. 큐레이터의 미술 글쓰기를 위한 몇 가지 원칙
  4. 질문과 답변 (사전 질문 포함)

1. 강연 / 워크숍의 목적

  • (교육홍보과) 구혜림 님께 질문하기. 교육 프로그램의 막바지에 들어간 본 강연의 목적은?
    • (혜림님의 답변) 글쓰기 = 필수적인 실무! + 큐레이터 & 연구자에게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
    • (섭외의 이유) 기존에 진행된 시민큐레이터 프로그램에 대한 지식이 있음 + 주변의 추천
  • 본 강연에 대한 박재용의 ‘뇌피셜’은?
    • 우선, 가르치는 것은 가장 큰 배움
    • 가르침은 이상적인 것에 대한 투사. (이 강연에서 제시하는 이상은 [장 자크 루소 식으로 말하자면] ‘현실’과는 다릅니다.
    • 시민 큐레이터 프로그램에 대한 지지 & 호기심
      • 이번 연도에 앞서서 프로그램 출범 시 멘토링을 하기도 했고, 프로포절 심사를 맡기도 했음.
  • 수강생들에게 바라는 것
    • 글쓰기의 기본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시간
      • 생각보다 자주, ‘주어’와 ‘동사’를 맞춰 쓰지 않은 문장을 마주하는 곳 = 미술 글쓰기의 세계
        • ‘못 쓴 글’의 역사는 유구하다! 왜일까요? 🤔🤔🤔
          • (레퍼런스 모호: 20세기 중반 국문학자의 미술평론에 대한 불평. 창비? 문지?)
      • 생각보다 자주, ‘나는 누군지 모르겠는데 필자는 아주 잘 아는 것 같은’ 어떤 개념이나 철학 사조를 끼얹은 글을 마주하는 곳 = 미술 글쓰기의 세계!
      • 일각의 의견: 미술 비평은 20세기 중반에 사망했으나, 지금의 비평은 마치 사망한 비평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굴고 있다. (자세히 다루기엔 시간 부족.)
    • 전시를 진행하게 된다면, 어떤 자세로 글을 쓸 지 생각해보는 시간
    • 몇 가지 실용적인 팁을 얻고, 궁금증도 해결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가 아닐까요.

2. 강사 소개

  • 최근에 쓴 이력서의 경력증명란 (2009~2020) 👉🏻 퀵 PDF 공유
  • 이력서 쓰던 중 셀프 질문 주고받기. 박재용은 어떤 사람이야? ‘통번역 많이 하고 해외 많이 다니는 사람’ (👈🏻 자문자답은 글쓰기를 할 때에도 유용한 방법. 왜? 뭔데? 어떻게? 누가? 등등)
    • 사실은 큐레이터이자, 프로듀서이고, 글을 씁니다. +번역과 통역을 좀 많이 해오고 있습니다.
      • 저를 미술 및 예술 영화 관련 통번역가로 알고 있는 분들도 많아요.
        • 2019년 한 해 동안 숫자를 세어 봄. 번역 작업을 위해 만든 폴더의 수 = 102개 (통역을 위해 만든 폴더의 수는 48개)
  • 글쓰기에 대한 생각
    • 한글로, 또 영어로. 다양한 형태와 목소리로.
      • 국내 미술 잡지 / 레지던시 등 프로그램 자료집 / 영어 기반의 국외 미술잡지 / 도록
        • (오래된 글이긴 하지만) frieze 👉🏻 링크
    • 1일 1글. 매일 달립니다.
      • 매일 아침 글을 써서 뉴스레터를 보내는 중 (6월 13일부터) 👉🏻 명상과 달리기
        • (뉴스레터 언급? 셀프 마감의 힘. 데드라인은 중요하다!)
  • 글쓰기에 대한 생각의 기원?
    • 결국은 origin story = 연극 극본을 많이 읽고 싶어 학부 첫 전공으로 영어영문학 👉🏻 이론이 재밌다 싶어 비교문학 추가 전공 👉🏻 더 ‘근본’적인 걸 읽고싶어 사회학 부전공 추가! 👉🏻 본격적으로 학술 연구 & 글쓰기 해보겠다며 영어영문학과 대학원 진학(NEW!) 했다가 👉🏻 90년 대 말, 2000년대 첫 10년의 ‘critical art비판적 예술’에 빠져버렸다… 😱

3. 큐레이터의 미술 글쓰기를 위한 원칙 (가변적)

  1. 정답은 없다.
  2. 누가 내 글을 읽게 될까?
  3. 글에도 TPO가 있다.
  4. 뼈대가 있는 글, 근육만 있는 글.
  5. 미술 글쓰기의 나쁜 사례.
  6. 짧은 글 쓰기가 더 어렵다.
  7. 뇌피셜에 빠지지 않기.
  8. 긴 글 쓰기도 쉽지 않다.
  9. 이걸 내가 다 써야 한다고요?
  10. 2020년의 미술 글쓰기.

1. 정답은 없다

  • ??

왜 정답이 없을까? 왜냐면, 정답이 없기 때문. (👈🏻 농담? 진담?)

  • 글쓰기 스타일에도 유행이라는 게 있고
    • 질문: 요즘 유행하는 (흥미있게 보고 있는) 글쓰기 스타일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 언택트 강의라 스킵
  • 유행하는 철학 사조나 미술의 경향도 있고
    • 전시회만 가면 자주 보는 프랑스 철학자 이름 같은 것!
      • 데리다… 등등. 한때 자주 봤었죠?
  • 무엇보다, ‘글’이 놓이는 자리(플랫폼, 매체)가 너무 다양해짐.
    • 과거를 상상해보자. 신문의 텍스트는 신문지에, 잡지의 텍스트는 잡지라는 물리적 ‘플랫폼’ 안에서만 볼 수 있었다. 논문이라면 도서관에 가서 찾아봐야 했다.
      • 그런데 지금은? 텍스트의 원래 출신에 관계 없이, SNS나 웹사이트에 편집되어 게시되고, 컴퓨터 모니터나 모바일 디바이스로 ‘마치 동일한 깊이의 텍스트’인 것처럼 접하게 됨.
      • 즉, 착각에 빠지기 쉽다! (그래서 정신을 잘 차려야 하고요, 오늘 비대면 강의를 통해 그런 부분도 생각해볼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 이런 상황에서, 큐레이터의 미술 글쓰기는 어떠해야 할까요?
    • (어쩌면) 몇 가지 방법은,
      • ‘아티스트처럼 글쓰기’
      • ‘에세이처럼 글쓰기’
      • ‘모호하게 쓰기’
      • ‘모르지만 아는 것처럼 쓰기’
      • ‘지나치게 친절하게 쓰기 (기분 나쁠 정도의 과잉 친절)’
      • ‘떠먹여주는 글쓰기’
  • 사전 설문조사에서 수강생들이 언급해준 미술 글쓰기에 대한 불만 언급하기. (지나치게 쉬워서 독자를 무시하는 것처럼 느껴지거나, 이해할 수 없게 어려워서 독자를 무시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는 의견)

오늘 우리가 배워 보려 하는 건 👆🏻👆🏻👆🏻 이런 글을 쓰기 위해서가 아님.

2. 누가 내 글을 읽게 될까?

내 글의 첫 번째 독자는 누구?

  • 정답은? (내 글의 첫 독자는 바로 나)
  • 자신의 글을 publish하기 전에 누군가에게 읽혀 보나요? (대부분 그러지 않는 듯?)
    • 혹은, 소리 내어 읽어 보나요?

미술 글쓰기의 독자로서

  • 미술(에 관한) 글을 접하는 곳은 어디인가?
    • (수강생 답변) 주로 SNS, 잡지 등.
  • 타인의 글을 읽을 때, 잠시 수험생 모드로. ‘출제자의 의도를 파악하는’ 관점에서 생각해보자.
    • 왜 썼을까?
    • 무슨 말 하고 싶어서 썼을까?
    • 글이 선언하는 바thesis statement는 뭘까?
      • 생각보다 단순할 수 있다.
        • (예) 이 전시는 시각적으로 즐겁다. 하지만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겠다. 👈🏻 이것이 어떤 글의 핵심 메시지일 수도 있다… 😱

해볼 만한 practice.

  • 전시장 2-3곳을 돌아다니면서, 전시장 입구의 A4 인쇄물을 여러 개 픽업.
    • 빨간펜을 들고, 반복되는 표현이나 네임드롭 등을 체크해본다.
      • 다시 ‘출제자의 의도’를 파악하는 ‘수험생’ 모드로.
      • 이걸 동료들과 함께해봐도 좋다.

미술 글쓰기 가운데, 제한된 대상을 목표로 하는 글쓰기?

  • 여기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 예를 들어 보도자료?
      • 혹은 도록의 글?
      • 전시장의 월텍스트?
      • 작품에 대한 캡션?
      • 심지어, 평론글?
  • 여러분이 자신의 전시에 관한 글을 생산해낸다면, 그 가운데 가장 많은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건 무엇이 될까요?
    • 어쩌면 SNS 공유용 포스팅?

3. 글에도 TPO가 있다.

T P O.  = Time, Place, Occasion.

  • 대림미술관 홍보 포스팅 (인스타그램) 👉🏻 링크
    • 이 포스팅은 누구를 대상으로 한 걸까요? 어떤 사람이 보라고 만들고 쓴 걸까요?
  • 국립현대미술관 <이런 전쟁> 보도자료 👉🏻 링크
    • (퀵 낭독 후)
      • 이 보도자료는 어떤 느낌이죠?
        • 명확한가요?
        • 뭘 강조하고 있나요?
      • (잠시 제목에 대해 논의할 것. 개막 시기와 주제에 관해.)
  • 매우 명확한, 목적이 뚜렷한 글을 한 번 볼까요? (또 보도자료, 그러나 이번에는 기업이 내보낸 것.)
  • 온갖 보도자료가 궁금하다면, 이런 곳을 참조: 뉴스와이어
    • 각종 국공립미술관 (사립은 잘 안 갖춰져 있음) ‘보도자료’ 란도 참조할 것. 주기적으로 해보아도 좋다.
    • 보도자료를 보고, 전시를 한 번 살펴보는 것도 해볼만 하다. 어떤 포인트들이 강조되는지도.

글은 다양한 목소리를 지닐 수 있습니다.

  • 유쾌한 일은 아니지만, 미술을 둘러싼 일은 때로 성명서의 언어를 초래하기도 합니다.

내가 쓰게되는 글의 TPO가 무엇인지 생각해봅시다.

  • 어디에서 (1차적으로) 보여질 것이며
  • 누구에게 말하는 글이며
  • 어떤 목소리로 말하고 싶은지?
  • (어디까지 말할 것인지?)
  • (참고: 해외 미술관 웹사이트들을 검색하여 ‘월텍스트’ 살펴보기! & 안타깝지만 서울에서 월텍스트 톤&매너에까지 신경 못 쓰는 이유도 언급하기. [시간과 인력의 부족. 전담 에디토리얼 팀의 부재.)

4. 뼈대만 있는 글, 근육만 있는 글 & 5. 미술 글쓰기의 나쁜 사례

개요 짜기 & Thesis Statement의 중요성

  • (저도 잘 못합니다만) 2020년 3월호 <아트인컬쳐> 기고글 개요 👉🏻 링크
    • 물론, 계획은 계획일 뿐!
      • 어떤 사람은, 몇 번을 썼다가 엎었다가 하면서 글을 써내기도 한다. (👈🏻 저도 그렇습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thesis statement는 필요하다.
    • 말 하자면, ‘한 문장 혹은 문단으로 요약하는 것’
      • 가상의 사례: “2020 SeMA 시민큐레이터프로그램 전시인 <컬렉션 리믹스하기>는 서울시립미술관의 컬렉션을 OOO이라는 관점을 통해 다시 살펴보고 OOO을 기준 삼아 OOO하게 재구성하는 전시다. 이 전시는 OOO한 공간인 OOO에서 열리며, 공간 구성은 OOO에 집중해 관객에게 OOO 한 경험을 제공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OOO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한다.”
  • 개요가 없이 줄줄쓰다보면 뭐가 될까요?
    • 뼈대가 없는데, 근육으로 버티는 글이 될 수 있다.
      • 이럴 때 ‘돌려막기’로 동원되는 것이 무엇일까요?
        • 왜 등장하는지 모르겠다 싶은 작품의 디테일이랄지, 왜 나오는지 모르겠다 싶은 이론가의 이름 등.
          • 이런 글, 본 기억 없는지 생각해보세요.
  • 반면, 뼈대만 있는 글도 존재합니다.
    • 하고 싶은 말이 있긴 한데, 그것에 대한 뒷받침을 어떻게 해야 할 지 수습이 안되는 글.
      • 어떻게 돌파할까?
        • 개요를 쓴 뒤 디테일 채워넣기
          • 안되겠다 싶으면, 표라도 그려볼 것!
  • 나쁜 글쓰기에 대해선, 수강생들에게 물어보기. (👈🏻 언택트 강연이라 수행하지 못함)
    • “왜 그 글이 나쁜 글이라고 생각했어요?”
  • 언급: 문제(?)는, 이제는 글이 복붙되어 맥락을 벗어나 돌아다니는 시대

6. 짧은 글 쓰기가 더 어렵다.

  • 만약에, 본인의 전시를 200자 원고지 1장 분량으로 요약해서 소개하라고 하면 뭐라고 쓸 건지?
    •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나요?
  • 내가 생각하기엔 다 중요한 것 같은데, 어디서부터 줄여야 할까?
    • 우선순위를 정해두자.
      • 다시 한 번, 개요와 thesis statement의 중요성.
    • 상상해봅시다.
      • 자신의 전시나 프로젝트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심지어 미술에 대해서도 모르는 사람에게 이걸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 (가족과 친구는 좋은 실험 / 훈련 대상입니다.)
  • 글이 짧으니, 경제성을 위해 개념어 파티를 벌여야 할까?
    • 예를 들어 ‘장소-특정적’과 같은 단어를 남발하면 어떨까?
      • (수강생 의견 구하기)
      • 가상의 사례:
        • “<컬렉션 리믹스하기>는 장소-특정적 설치 작업 신작 네 점을 선보인다.”
        • “<컬렉션 리믹스하기>에서는 전시 장소의 성격에 맞춰 새로 제작한 작업 네 점을 볼 수 있다.”
  • 결국, 나의 전시/프로젝트의 핵심이 무엇인지,
    • 이 전시/프로젝트를 통해 ‘해결’하려는 문제, 이 전시/프로젝트를 통해 ‘말하고 싶은’ 것 등을 정리해두자.
      • 질문의 목록을 만들어봐도 좋습니다.
        • 주제가 뭐에요?
        • 누가 참여해요?
        • 뭐가 있어요?
        • 왜 하는 거에요? 등.
          • 아주 근본적이지만 내 머릿속에 한 번에 다 담고 있으면 깜빡깜빡하는 것들.

7. 뇌피셜에 빠지지 않기.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 자기 객관화.

  • 창작자를 대상으로 한 학교 강의에서 가장 많이 했던 이야기
    • “당신의 머릿속에서는 모든 것이 다 말이 된다. 하지만, 나에게도 말이 되도록 설명해줄 수 있을까?”
  • 기획자의 머릿속 세상에서, 자신의 프로젝트는 완결적입니다.
    •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당신의 프로젝트에 별 관심이 없습니다.
      • 즉, ‘설명’이 필요하다는 말.
        • ‘설명’이라고 해서, 모든 걸 다 미주알 고주알 알려줄 필요는 없습니다. (‘어디까지 알려줘야 하나?’ 의 문제 언급할 것.)
    • 상상의 practice: 잠시, 아주 유명한 작가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봅시다. 혹은, 이 작가의 전시를 기획한 기획자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봅시다.
      • 뭐가 쉬울까? = 말이 필요없다.
      • 뭐가 어려울까? = 설명이 필요없는 연상의 결과물과 다른 걸 하고싶은데, 설명하기가 어려워진다!

한편, 뇌피셜에 빠지지 않으려면

  • 시차적 관점의 중요성 = 거리를 두고 보기 (물론 어렵다. 하지만 해야 함.)
    • 우리에게 PR을 위한 어시스턴트가 있다면, 위임할 수 있는 업무이기도 함. (그러나 우리에게는 그것이 없다.)
      • 독립 큐레이터는, 한 사람 안에서 학예실, 홍보과, 시설관리과 등 여러 부서가 동시에 일하는 미술관이 작동해야 하는 상황임. 👉🏻 본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여러분 역시 마찬가지.
  • 생각을 ‘외부화’하자
    • 외부화의 가장 좋은 방법 = 글
      • 문장 단위의 글이 아니어도 된다.
        • 키워드를 적은 포스트잇, 표, 무엇이든 본인에 맞춰서.
          • 어떻게든 머릿속에서 끄집어내는 게 중요함.

가능하면, 주변의 도움을 꼭 받자

  • 완성되지 않은 걸 공유하는 두려움?
    •  한 번만 생각해보자. 썩 좋지 않은 결과물을 불특정 다수에게 공개하는 게 더 두려운 일임.

형용사나 수식어를 쓰기 전엔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

  • (수강생에게 묻기) 왜일까요?
    • 답: 형용사나 수식어야말로 나의 주관적인 판단이 스리슬쩍 녹아들어가기 가장 쉽고 위험한 언어이기 때문.
      • 예: 기획자의 글에서는 “가벼운 필치로 그린”이라고 설명한 어떤 캔버스 작업이, 관객 입장에서 봤을 때엔 전혀 가볍지 않을 수 있다.

8. 긴 글 쓰기도 쉽지 않다. & 9. 이걸 내가 다 써야 한다고요?

도록 글의 공식

  • 잘 보면, ‘공식’이 존재합니다.
    • 예: 전시 주제 소개 👉🏻 작가별 작품 소개 👉🏻 전시에 대한 짧은 소회로 마무리.
    • 정 ‘안되겠다’ 싶으면, ‘공식’을 따를 수도 있습니다.
      • 물론, 이렇게 할 경우에도 ‘thesis statement’가 없으면 ‘근육만 있는 글’이 됨…
    • 신기하게도, ‘공식’에 따라 쓴 글임에도 잘 안 읽히는 경우가 많습니다.
      • ‘뇌피셜의 함정’을 피하지 못한 경우가 많기 때문.
        • Tate Modern 월텍스트 소개 👉🏻 링크
          • ‘의미부여’보다 담백한 설명에 초점을 맞추었음.
            • ‘월텍스트’라는 TPO를 생각해보면, 이해가 가죠.

질문: 그런데, 긴 글은 대체 어떻게 쓰나요?

  • 정답: 짧은 글을 늘려서 쓰면 됩니다.
    • …!? 🤯😳?
      • ‘뼈대’ & ‘근육’
        • 뼈대가 개요라면, 근육은 디테일.
          • 뼈대를 잘 짜면, 디테일은 취사선택 할 수 있다.
            • 취사선택의 우선순위가 헷갈린다면,
  • 긴 글은 어디에 들어갈까요?
    • 아마도, 도록이겠죠?
      • (보도자료에 도록을 쓰는 분들이 종종 있습니다만…)
    • 여력이 안 된다면, 긴 글을 먼저 써놓고
      • 길이를 줄여 전시의 이곳저곳에 활용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 권하고 싶지 않지만, 사실상 아주 흔하게 쓰이는 방법임.
          • 👈🏻 전시보러 갔는데 월텍스트와 캡션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그럼 100%임.

이걸 내가 다 써야 한다고요? (네, 이렇게 다양한 글을 여러분이 다 써야 합니다.)

  • 수강생에게 질문하기. 글의 종류에 대해.
    • 글쓰기를 요리처럼 생각해봅시다. 메인 디쉬, 사이드 디쉬, 향신료. 메인 디쉬는 뭘까요?

10. 2020년의 미술 글쓰기.

(약간의 강의 요약)

모두가 ‘위기’를 외치지만, 사실 ‘글’ 자체는 흘러 넘치는 2020년

  • 책과 신문 산업이 사양길이라고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많은 ‘글’이 생산, 유통되고 있다. 트위터와 인스타그램 등에 올라오는 / 올리는 온갖 글, 종종 페이스북에서 볼 수 있는 신문 사설 급 길이의 글들을 생각해보세요. + (저도 쓰고 있지만) 심지어 뉴스레터의 전성시대라는 말도 있고, 디지털에서 이뤄지는 ‘롱 폼 저널리즘’까지.

그런데, 글의 ‘근본’을 파악하기 어려워진 2020년 = 글 쓰는 입장에선 외려 더 어려워진 상황

  • 나의 글이 어디로 어떻게 흘러갈 지 알 수 없다.
    • Worst case scenario: ‘긴 글’에서 ‘한 문장’만 잘려나가 맥락이 소거된 채 SNS 상에서 조리돌림을 당한다면?

사람들은 짧고, 기승전결이 있는 내러티브/스토리텔링을 원한다.

  • 과연 이런 욕구는, 미술 글쓰기가 이룰 수 있는 목표일까?
    • 우리가 자신의 전시 / 프로젝트에 대해서 쓸 글은 ‘모든 걸 다 알려줄게’라는 태도를 취해야 할까?
    • 글을 읽을 사람에게 ‘스토리텔링’을 해줘야 할까?
    • ‘지금부터 할 이야기는 좀 어려울 거야, 하지만 따라와줘.’ 라는 경고 문구를 붙여야 할까?
      • 나의 글을 읽게 될 사람이 누구라고 가정하는지에 따라, 달라질 거에요.

심지어 SNS 포스팅의 해시태그도 고민해야 하는 2020년

  • 수강생 여러분, 본인의 전시 / 프로젝트 SNS 게시물에 어떤 해시태그를 달 지 고민해보셨나요?
    • 안 해보셨다면, 한 번 쯤 생각해보길 바랍니다. (Yes, it’s 2020.)

글에는 발이 달려 있고, 글은 해상도가 매우 높은 (당신을 비추는) 거울입니다.

  • 한 번 퍼블리시된 글에 대해서, 필자는 통제할 수 없음. (다시 한 번: 공개 전 피드백의 중요성.)
  • 전시 서문, 리플렛 글에서 ‘반복되는 표현’과 ‘(자의적 판단에 기인한) 형용사’를 빨간펜으로 밑줄 쫙. 해보자. 꼭.

글쓰기의 원칙에 대해서는 여기까지.


4. 질문과 답변

사전 질문 답변

  • 요즘 전시 트렌드?
  • 전시를 잘 전달하기 위한 글쓰기는 어떤 종류가 있으며, 가장 선호하시는 방식에 대해 들어보고 싶습니다!
    • 정답은 없다 😱. 그러나, 구조가 잘 잡힌 글, 쓸데 없이 개념이나 이론가를 끌어와 네임드롭하지 않는 글을 좋아합니다.
  •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소장품을 선정하는 기준이 궁금합니다.
    • 제가 대답드릴 수 없음 + 아직은 명확하지 않다고도 생각함.
    • 한편, 주요 국공립미술관 웹사이트에 들어가 ‘소장품’ 섹션을 탐험해보자! ‘체계’에 대해 감각을 익힐 수 있습니다.
  • 미술 전공을 하지 않은 일반인, 비큐레이터인 분들이 미술에 관한 글을 쓸 때 많이 하는 실수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 전공자 비전공자를 막론하고, 가장 무서운 건 ‘뇌피셜’. ‘의견 제시’와 ‘뇌피셜’은 다르다!
  • 기획자가 되기 위해서는 글을 잘쓰는 것이 정말 중요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어떠한 글이 좋은 글인지에 대한 기준이 없다는 점에서 미술글쓰기를 어떻게 성장시킬지 , 그 방향성을 상상해보기 어렵습니다. 물론 좋은 글이란 것은 주관적인 기준에 의한 것이지만, 박재용 큐레이터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또,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 실재로 활동하시는 큐레이터 분들은 어떠한 노력들을 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 다른 분들이 어떤 노력을 하는지는 모르지만, 저는
      • 일단 많이 읽기 – 종류를 가리지 않고. 종이책이든 오디오북이든, 일 주일에 한 권은 읽어보려 합니다.
      • 뭐든 써보기 – 저 역시 올해부터 시작한 거지만, 1일 1글을 위한 명상과 달리기 노트, 2주에 한 번 보내는 뉴스레터 등 노력 중입니다.
        • ‘종류가 다른 플랫폼에 글 써보기’를 위한 노력임.
      • 시간 제한을 두고 글 써보기도 좋습니다. 강력 추천.
  • 개최하신 전시 경험
    • 본 강연의 취지와 거리가 멀고, 거기까지 이야기하기엔 시간이 부족.
    • 글쓰기에 대해 말해보자면 = 학예팀 vs 홍보팀의 신경전.
      • MoMA나 휘트니 등 미술관의 캡션 가이드라인.
  • 좋은 미술 평론의 예시를 보고 싶습니다. & 다양한 층의 대중들이 좀 더 다가가기 쉬운 글은 어떻게 써야하는지, 전시 서문에서는 무엇을 다뤄야하는지 궁금합니다.
    • 독자를 무시하지 말기 + 지나친 우쭈주도 금지. 전시 서문에서 다뤄야 할 것 = 일단은 ‘정보’ 이겠죠? ‘무엇’에 대한 거고, ‘왜’ 하는 건지. 가능하다면 ‘누가’ ‘무엇’을 하는지도 다루는. 물론, 이 내용을 통해 관객이 뭘 얻어갔으면 하는지를 지나치게 자세히 말하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 전시 관람의 재미를 뺏아가는 거기도 하고, 전시와 작품을 관람객이 스스로 – 자신의 버전으로 완성시킬 수 있게 두길 권합니다.
  • 미술 관련 통역활동도 많이 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처음 통역을 시작하게 된 계기나 통역 경험 중,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를 듣고 싶습니다.
    • (짧게 답하고 넘어가기) 일을 맡겼다가 계속 불만족스러워서 시작함. 요리 애호가가 차린 맛집?
  • 대상을 특정한 글쓰기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 김신식 <다소 곤란한 감정> 문구 인용하기.
      • 미술 평론 = 다른 평론가를 의식하지 않는 듯 하다고.
    • 대상을 특정한다 함은, 이를테면 미술계 내부의 전문가, 혹은 특정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거겠죠.
      • 하지만 조심할 건, 그러한 글이 ‘general purpose’의 글이 아니라는 점 역시 글에서 잘 전달해야 한다는.
        • 물론, 영화나 음반, 음식처럼 ‘몇 세 이상 관람가’ 혹은 ‘매운맛 3단계’ 같은 표시를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불가함)
  • 디자인의 경우 디자인 전시, 디자인 아카이브 등에 대한 개념을 탐구하고 있는 과정이며 인접 분야인 미술, 공예 등과의 경계에 대한 고민이 큽니다. 미술의 경우 타분야(기술, 공예, 디자인, 건축 등)와의 경계에 대해 어떤 자세나 태도, 논의가 있나요? 없다면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예술에서 미술이 갖는 제도적 우위와 연관이 있을까요? 동시대 현재 미술이 갖는 ‘불안’은 무엇일까요?
    • (짧은 답) 지금 시점 기준에서 ‘현대 혹은 동시대 미술’은 다른 예술 및 학문 분야에서 ‘애매해서 갈 곳 없는’ 온갖 것들을 수용하는 장이 된 듯 합니다. 이것이 바로 미술의 불안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죠. (동시에, 같은 현상을 가지고 ‘미술이야말로 가장 지적이고 근본적인 예술’이라고 생각해볼 수도 있겠습니다.)
    • 하지만 무엇보다, ‘전시’라는 것을 통해 뭘 보여줘야 할 지에 대한 생각이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라고도 생각합니다.
  • 전시 제목을 짓는 기발한 방법
    • 자유연상, 인터넷 검색, 멍때리기, 브레인스토밍
      • 가장 좋은 건, ‘연관짓기’라고 생각합니다.
        • (길게 설명 불가하지만) 최근 스탠드업 코미디 연습에서 16년 만에 실현된 파맛 첵스와 혼인신고시 엄마성 따르기의 공통점으로 엄청 웃긴 skit이 있었음.
  • 신생 공간이 활발하게 출현하던 시기에는 한두 공간의 SNS 계정만 팔로우해도 감자 줄기, 시냅스처럼 연결되어 있는 다른 공간들을 알 수 있었는데, 지금은 오히려 익명의 SNS를 따라가야 지금 시각예술의 활동들을 코끼리 만지는 장님처럼 겨우 추적해나갈 수 있는 거 같습니다. 또한 인스타그램의 친구추천에 뜨는 새로운 프로젝트의 계정은 끊임없어 팔로우를 제안하고요. 제 질문은 이렇습니다. 지금의, 2020년의 그리고 다가올 2021년의 미술씬을 조망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들이시는지 궁금합니다. 여담으로 선생님께서 준비하고 계신 ‘냉정한 사실’ 프로젝트도 이런 조망에 도움이 될 거 같습니다.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 (짧은 답) SNS 플랫폼에 속하지 않는 곳에 정보 축적하기. 뉴스레터, 개인 웹사이트 등. 노출 알고리즘의 독재를 벗어난 곳에서.
  • 미술 글쓰기’는 무엇일까요? 일반 글, 또는 상업적으로 홍보하는 글과 어떻게 다를까요?
    • 미술은 본질적으로 (흔히 말하는 ‘미술’을 기준으로) 시각적인 것이고, 전시라는 것은 아직까지는 물리적인 경험이며, 게다가 일시적인 경험이기까지 합니다.
      • 이런 제약 조건을 딛고 하고픈 말을 전하는 게 바로 미술 글쓰기. 아닐까 합니다.
    • ‘미술’을 다룬다는 걸 핑계 삼아 한 없이 난해하거나 멋대로 쓸 수 있는 것이기도 하죠. (그걸 읽는 분들에게는 심심한 위로를…)

추가 질문

  • 서울리딩룸에 대해서 알고 싶습니다.
    • 약 10여년 간 여기저기서 모은 미술책을 어떻게든 잘 공유하려고 노력 중인 현대미술 서가. 지금은 코로나19로 인테리어공사를 하다가 멈춘 상태. 개인 사업자이기도 합니다.
  • 미술 글쓰기에 필요한 덕목, 참고 자료, 참고 사이트, 참고 강의나 소모임, 추천 도서 등이 궁금합니다. 시민큐레이터 교육때 이메일 글첨삭은 있었지만 글쓰기 강의가 없어서 이번 글쓰기 강의를 가장 기대하고 있습니다. 수업때 뵙겠습니다.
    • 덕목: “나는 아무도 아니다! 세상은 내 작업에 관심이 없다!”라고 생각 또 생각합니다. (농담 반 진담 반)
    • 덧붙여, ‘한국말의 아름다움’에 대해 생각해보기. 한글 찬양이 아니라, 한국어 발화나 문장이 어떻게 앞뒤가 안 맞는 말을 유려하게 쓰거나 말할 수 있게 해주는지에 관해서.
  • 강사님이 가장 보람 있었던 기획(전시)/가장 실패했던 기획은 무엇인가요?
    • (짧게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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