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레스 프로젝트, 삼청동에 문을 열다

  • 방문 후 3시간이 지나기 전, 무엇이든 남겨보고자 만든 “3시간이 지나기 전에” 카테고리에 속한 글.
  • 공식적인 지면을 목적지로 삼지 않은 기록 혹은 메모를 남겨두는 곳입니다.

방문일시: 2023년 4월 27일 목요일 오후 2시-4시
장소: 서울 종로구 율곡로1길 37 “페레스 프로젝트”
글 작성과 업로드에 걸린 시간: 1시간+
사진 크레딧: Photo by Jaeyong Park


신라 호텔 지하에 공간을 운영했던 (그리고 앞으로도 당분간은 공간을 지킬) 페레스 프로젝트가 삼청동의 한 건물을 통째로 쓰는 공간을 마련했다. 이곳은 일본식 돈까스 전문점인 “긴자바이린”과 한식 레스토랑 “비나리”가 2011년 무렵부터 10년 넘게 영업했던 건물이다.

국내외 취재진에게 배포한 보도자료에 따르면, 해당 건물의 1층은 애초에 갤러리 공간으로 쓰일 것을 감안해 층고를 높여 지었다고 한다. (“긴자바이린”으로 쓸 당시에는 실내에 복층을 만들어 둘 정도였다.)

이제 건물은 1-2층의 갤러리와 3-4층의 사무 공간으로 쓰인다. 3-4층의 회의실과 프라이빗 뷰잉룸에선 오랜 시간 미대사관저로 쓰였던 “송현동 부지”가 시원하게 트인 모습을 내려 볼 수 있다.

2016년에 쓰인 위 블로그 포스팅의 내용은 지금도 유용한 정보를 제공한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시작되어 베를린으로 확장했고, 그 시작은 변호사로 일하던 하비에르 페레스(Javier Peres)였다는 점과 갤러리의 ‘도발적’ 성격을 알 수 있다. 갤러리는 2022년 4월 밀라노 시내 중심가의 18세기 신고전주의 건물 지점을 열었고, 2023년 4월에는 서울 삼청동에 문을 열었다.

왜 서울일까?

새로운 서울 지점 개관을 맞아 직접 한국을 찾은 하비에르 페레스는 서울이 “logical choice”라고 말한다. 그 말은 사실이다. 중국은 (또 홍콩은) 다시 검열이 부활했고 (두 나라에서 ‘당대 미술’이 규제되지 않은 회색 지대로 놀랄만큼 흥미로운 영역이었던 적이 있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대만은 아직 확실치 않으며, 일본은 소득 분포가 너무 균등하며, 싱가포르는 도시 국가일 뿐인 상황에서, 그나마 한국이 ‘열려 있는’ 곳이기 때문일까?

여러 세대의 경험

페레스 프로젝트 이전에 하비에르 페레스가 경험한 예술의 경험, 본인의 정체성에 대한 자각, 그의 가족에 관한 사적인 이야기를 종합해서 생각할 때 (페레스 본인이 자신의 컬렉팅 역사에 관해 몹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 주었으나, 검색을 통해 확인할 수 없는 것으로 보아 오프 더 레코드로 간주하는 것이 맞겠다. 개인 블로그에 기록 차원으로 남기는 글이니 더욱 그렇다.), 페레스 프로젝트와 같은 프로젝트는 적어도 3세대 이상 축적된 자본의 결과물로 보아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때 ‘자본’이란 단지 ‘돈’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교육과 문화, 세대를 통해 전해지는 취향의 총체로서의 ‘자본’을 말하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기자 회견을 다녀와 문제의 ‘흥미로운 발언’에 관해 (내) 사무실(을 방문한) 동료들과 함께 나누었던 생각인데, 여기서 이어지는 또 다른 질문이 있다. 그렇다면 한국에는 이렇게 3세대 이상 축적된 자본을 소유한 집단이 존재하는가? 예컨대 서로 다른 세대 간에 공유되고 동의가 이뤄지는 일관된 미감 혹은 예술적 선택의 양식과 같은 것이 있긴 할까? 누군가는 그것이 없지는 않다고 말하겠지만, 글쎄, 이렇게 3세대 이상 공유되고 있는 건 그저 금전적 자본이나 학력 등을 통한 인맥의 자본 쯤 아닐까 한다.

이를테면 (80년대 생인) 내 주변에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사람들을 생각해보자면, 몇 명 되지 않는 듯 하지만 증조 할아버지가 조선 말기에 무슨 일을 했다더라 – 할아버지는 제국대학 어디 혹은 갓 생긴 한국의 대학을 – 부모님은 그 대학들이 독립 이후 이름을 바꾼 대학을 나와 해외에서 추가 학위를 – 본인 역시 그러한 대학 혹은 국외의 학교를 다녔다 – 는 식의 흐름이 없지는 않다. (그리고 대체로 꽤 살 만 한 친구들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일관된 취향의 학습이나 전달, 고도화가 이뤄진 모습을 본 적은 없다 (적어도 내가 보기엔 그랬다).

어쩌면 이건 당연한 일일 수 밖에 없다. 대한민국은 건국된 지 100년도 되지 않은 국가고, 한국의 부자들은 (자본주의 역사가 더 긴 나라들에 비해) 생각보다 부유하지 못한 편이다. 심지어 “부불삼대(富不三代)”, 즉 “부자는 3대를 가지 않는다”는 말도 있으니, 상징 자본과 문화예술 소양의 세대간 축적을 넘어 부의 축적도 (아직은) 3대를 넘기는 모습이 흔치 않은 것 같다. 적어도 한국에서는 그렇다.

다시, 서울인 이유는?

지금의 상황에서 서울이야말로 아시아 미술 시장에서 ‘outpost’로 삼기에 적절한 곳이기 때문이다. 세계 여러 곳에 지점을 두고 운영되는 국제적 갤러리 입장에선 굳이 한국 사람, 한국 시장만을 감안해 서울에 분점을 낼 이유가 딱히 없다. 이들에게 서울은 아시아를 아우를 수 있는 적절한 곳이다. 역설적이게도, 2000년대 초반 대한민국 정부가 꿈꿨던 ‘동북아 허브’의 꿈이 20년 넘은 지금 구현되려는 것 같다. 물론, 그 이유는 내재적 역량의 변화도 있겠지만 외부 요인의 덕이 더 크다는 점을 인정해야 하겠다.

그나저나, 소속된 곳이 있는 기자도 아닌 내가 왜 기자회견에?

페레스 프로젝트의 삼청점 오프닝 기자 회견에 참여한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한국 내 일간지 기자들이었다. 상하이와 도쿄에서는 “아트 뉴스 페이퍼”와 “미술 수첩”의 기자가 소식을 취재하러 (며칠 간의 일정으로) 서울을 들렀다. 그런데 나는 무슨 연유로 이 자리에 함께 하게 된 걸까. 그건 바로 최근 몇 년 사이 애매하게 움직이고 있는 내 위치 덕분이다.

전시를 만드는 큐레이터, 텍스트를 번역하는 번역가, 말을 옮기는 통역가, 좀 더 의미 있는 글을 써보려는 비평가, 취재에 가까운 글을 쓰는 저널리스트, 혹은 ‘아트 라이터’ 역할을 겸하는 와중에, ‘한국에서 열리기는 하지만 국제적으로 영업하는 홍보대행사에 홍보를 맡기는’ 대규모 미술 행사에 대한 리뷰를 한국어가 아닌 언어로 쓰이고 국제적으로 유통되는 매체에 쓰게 되는 일들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예술 전문 국제 홍보 대행사에 나 역시 ‘press contact’로 이름을 올리게 되고, 그러다 보니 이런 저런 행사에 ‘저널리스트’ 격으로 초대를 받게 되는 일도 생긴다.

이건 내게도 새로운 일인데, 한국인 기자 분들과는 통역가나 모더레이터 자격으로 안면을 익히는 반면 해외 예술 언론인들과는 ‘외신 취재진’의 일부로 ‘프레스 투어’를 다니며 친교를 트게 되는 일도 생긴다. 덕분에 상하이와 도쿄에서 온 (잠재적) 동료들에게 어떤 연유로 한국을 찾았는지 물어볼 수 있었고, 나 역시 아시아 다른 국가/도시에서 열리는 전시나 행사에 취재차 초청 받아 방문할 수 있을 거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서울은 국제적일까?

이처럼 어정쩡한 위치에 있다 보니, 서울을 기반으로 하는 한국 사람이지만 잠시 한국인의 눈을 내려 놓고 상황을 바라보게 되는 일도 많아지고 있다. 예컨대 페레스 프로젝트 개관을 맞이해 열리는 Cece Phillips의 전시에 대한 어느 기자 분의 질문을 통역된 영어로 듣고서 ‘대체 어떻게 저런 질문을 하는 거니?’라고 내게 되묻는 외신 저널리스트와의 대화.

녹음을 해두지 않았기에 정확한 워딩을 옮길 수는 없지만, 마치 ‘한국엔 LGBTQ 이슈가 없는데, LGBTQ를 다루는 작품들을 보여주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 같은, 모든 부분을 수정해야 할 것 같은 질문이 있었다. 여러 차례 여러 자리에서 말하고 있지만, 서울은 여전히 그다지 국제적인 도시가 아니며, 서울이 지금 각광받는 건 우리가 잘난 탓 만은 아니라는 걸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서울로 몰려오는 외부의 인력과 자원을 즐기는 사람들이 뭐라고 생각하든, 서울에 대한 각광은 밀물-썰물과 같아서 멀뚱멀뚱 서 있다간 손에 잡히지 않는 파도처럼 사라지고 말 것이다.


생각보다 더 긴 시간을 할애한 글쓰기 중 찾아둔 몇 가지 링크

Disclaimer

  • 이 글은 ‘목적 없는 개인 블로그 포스팅’ 입니다. 글에 언급한 생각의 단서나 단초는 기회가 된다면 편집자의 손길을 거치는 지면을 통해 확장할 수 있습니다.
  • 페레스 프로젝트와 관련하여, 한국어로 출간되는 월간 미술 잡지 [아트인컬처]에 작가 함 게르데스의 전시가 언급되는 리뷰를 게재한 적이 있습니다.
  • 글의 내용에 사실 관계가 맞지 않는 부분이 있거나 수정을 요청할 경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