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가 작가로 인정받는 건 언제일까요?
평생 한 번도 전시를 열지 않고, 15만 장이 넘는 사진 중 7천 장만 직접 인화했으며, 4만 5천 장은 현상조차 하지 않은 채 세상을 떠난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죽은 지 12년 만에 “20세기 최고의 거리 사진가 중 한 명”으로 불리게 되었다면, 과연 그는 생전에 이미 ‘작가’였던 걸까요, 아니면 죽은 후에야비로소 ‘작가’가 된 걸까요?
더 복잡한 건, 본인의 동의 없이 사후에 공개된 이 모든 사진들이 윤리적으로 정당한가 하는 문제입니다. 우리는 지금 누군가의 사적인 기록을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소비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앤 마크스(Ann Marks)는 좀 특이한 이력을 가진 저자예요. 다우존스(Dow Jones)에서 마케팅 임원으로 일했던 기업인 출신입니다. 2013년 아카데미상 후보작 다큐멘터리 『Finding Vivian Maier』를 보고 비비안 마이어에 매료되어, 본격적인 조사에 나섰죠. 마케팅 전문가다운 체계적 접근으로 3대에 걸친 가족사를 추적하고, 의료 전문가들의 소견까지 받아가며 368페이지 분량의 책을 완성했습니다.

그런데 비비안 마이어에 대한 책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에요. 2007년 존 말루프가 경매에서 그녀의 네거티브를 발견한 이후, 이미 상당한 양의 출간물과 미디어가 쏟아져 나왔거든요.
기존 출간물들은 주로 이런 프레임이었습니다:
존 말루프는 『Vivian Maier: Street Photographer』(2011), 『Vivian Maier: A Photographer Found』(2014) 등을 연달아 출간했는데, 주로 사진 작품 자체에 집중한 화집 성격이 강했어요. 2013년 아카데미상 후보에 오른 다큐멘터리 『Finding Vivian Maier』 역시 ‘신비로운 발견담’에 초점을 맞췄죠. 보모로 일하면서 몰래 10만 장이 넘는 사진을 찍었다가 죽은 후 발견된 ‘천재 아웃사이더’의 서사였습니다. (사실 오늘의 책 역시 한국어판 부제는 “보모 사진가의 알려지지 않은 삶을 현상하다”지요!)
2016년 파멜라 배노스의 『Vivian Maier: A Photographer’s Life and Afterlife』는 좀 더 학술적 접근을 시도했지만, 여전히 미술사적 맥락에서 그녀의 작품을 평가하는 데 머물렀어요. BBC의 「Witness History: Vivian Maier Secret street photographer」 같은 프로그램들도 마찬가지로 ‘숨겨진 천재 사진가’라는 프레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고요.
이를테면 이런 신문 기사가 있어요. “아무도 몰랐던 사진가, 비비안 마이어…누구에게도 공개된 적 없는 필름” https://www.mk.co.kr/news/culture/6672121 – 이제 어떤 패턴이… 보이죠?
그런데 앤 마크스의 접근법은 전혀 달라요. 그녀는 “누가 비비안 마이어였고, 왜 자신의 사진을 공유하지 않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미스터리 해결”이라고 장담합니다.
첫째, 3대에 걸친 가족사 추적이에요. 마크스는 비비안의 조부모부터 시작해 프랑스와 독일에서의 가족 역사를 상세히 파헤쳤습니다. 특히 정신분열증 진단을 받은 오빠 칼의 기록을 추적하고, 어머니 마리가 자기애성 성격장애를 앓았을 가능성을 제기해요.
둘째, 심리학적 진단 시도입니다. 노스웨스턴 대학교의 도나 마호니 박사 등 전문가들의 소견을 인용해 비비안이 “고전적인 스키조이드 장애” 사례일 수 있다고 주장하죠. 사진 촬영을 일종의 “보상 메커니즘”이자 “대처 방식”으로 해석합니다.
셋째, 외모와 성 정체성에 대한 분석이에요. 마크스는 비비안의 “남성적 외모”, “호르몬 불균형”, “라인배커 같은 팔” 등을 상세히 묘사하며, 이것이 어린 시절 성폭력 트라우마와 연관될 수 있다고 추측합니다.
하지만 이런 접근법은 상당한 비판을 받고 있어요. 『Cleveland Review of Books』의 다니 라모르테는 “마크스가 비비안을 일종의 로르샤흐 테스트로 만들어버렸다”고 지적했습니다. 『New Republic』의 비평가는 “만나본 적도 없는 사람에 대한 원거리 진단”의 위험성을 경고하며, “비비안을 정신질환자로 축소시키는 것”이라고 비판했어요.
- 『Cleveland Review of Books』 다니 라모르테의 리뷰: https://clereviewofbooks.com/ann-marks-vivian-maier-developed-review/
- 『New Republic』의 비평: https://newrepublic.com/article/164770/vivian-maier-photographer-biography-review
특히 “사진을 찍는 것이 창작 활동이 아니라 강박적 증상”이라는 해석에 대해서는 “작가가 버린 원고 더미를 보고 정신장애의 증거라고 할 수 있는가?”라는 반박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마크스의 책이 가진 의미는 분명해요. 기존의 ‘신비로운 천재’ 서사에서 벗어나 구체적인 개인사와 가족사를 추적했다는 점, 그리고 “왜 그녀는 평생 사진을 숨겼는가?”라는 핵심 질문에 나름의 답을 제시하려 했다는 점이죠.

고은의 노트
여러분은 현재까지 몇 장의 사진을 남겼나요? 문득, 제 핸드폰의 사진앨범을 들여다보니 사진 4만여장과 3천개의 동영상이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공유하거나 전시하고 싶은 것들은 전혀 아닙니다. 이번 기회를 빌어 ‘내가 죽기 전에 기필코 깨끗이 정리하리라’는 마음을 먹습니다. 하지만 결국 영원히 그렇게 할 수 없겠죠?
거기에는 쓸데 없는것, 지우고 싶은 것 사이 그래도 언젠가는 다시 들여다보고 싶은 것들이 혼재되어 있을 테니까요. 마이어도 이런 고민들을 끝내 해결하지 못한 걸까요? 물론 그의 사진은 제 핸드폰에 이미지 보다는 훨씬 많은 애정이 담긴 흥미로운 것들이었을 테지만요!
2007년 보관 창고 경매에서 유품이 발견된 뒤, 비비안 마이어는 무명에서 한순간에 현대 사진사의 화제의 인물이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따라붙은 질문은 세 가지 정도 인것 같습니다. 그는 과연 누구였을까? 그의 사진은 그의 삶을 얼마나 비추고 있을까? 그리고 이 사진들은 얼마큼의 예술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을까? 약 400쪽에 이르는 앤 마크스의 책은 이 질문들을 야심차게, 그러나 동시에 섬세하게 서술합니다.
저자는 마이어의 개인 문서와 사진 아카이브(약 14만 장), 프랑스·미국을 오간 인터뷰와 계보 조사까지 폭넓게 다뤘습니다. 저자는 마치 뛰어난 명탐정 처럼 때론 복원사 처럼 떠돌던 소문을 문서로 바로잡고 흐릿한 날짜를 명확히 다잡습니다. 그 결과 뉴욕과 프랑스의 유년기, 시카고 일대에서의 보모 생활, 말년의 불안정한 삶까지 꽤 마이어에 대한 믿을 만한 연대기를 말해줍니다. 이 연대기는 책의 전반에 걸처 마이어의 가족 관계와 어린 시절의 상처, 작업 동기와 같은 중요한 주제의 근거가 됩니다.
깨어진 가족사, 잦은 이주, 경제적 불안정은 마이어가 아웃사이더로 머물 수밖에 없었던 조건이라고 말합니다. 거울과 그림자를 활용한 자화상처럼, 존재하면서도 자신을 가리는 습관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까요?
그 중 가장 신뢰가 되는 부분은 저자가 마이어에게 씌어진 “완벽한 비밀주의자”라는 이미지를 벗겨 준다는데 있는 것 같습니다. 현상·인화가 멈춘 데에는 현실적 제약이 있었을 뿐, 마이어는 때로 주변과 사진을 공유했고, 네거티브에 라벨을 붙여 정리하기도 하는 등 자신과 자신의 사진의 위치를 생각했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이 책은 그저 소제목과 함께 사진을 훑어 보는 것 만으로도 꽤 즐겁습니다. 길거리 초상, 버스와 인도에서 포착한 짧은 장면들, 우연의 타이밍이 만든 대비 등 마이어가 가진 재능과 아름다움이 잘 드러납니다. 말년의 컬러 사진도 마이어를 어두 침침한 창고 밖으로 나오게 하는데 한 몫을 합니다:)
이 책은 히스테리에 쌓인 신화가 될 뻔한 인물을 다시 ‘살아 있는 사람’으로 데려오는 책인 것 같습니다. 루머를 기록과 증거로 바꾸어 놓되, 비밀스럽지만 다정한 이 사진들의 빛을 흐리게 하진 않습니다.
재용의 노트
비비안 마이어 현상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먼저 “사후 발견 작가”라는 미술사적 맥락부터 짚어봐야 할 것 같아요.
잠깐! 미술사에서 “사후 발견”의 계보에 대해
사실 비비안 마이어가 유일하게 죽은 후에 재평가받은 작가는 아니에요. 빈센트 반 고흐가 대표적이죠. 생전에 단 한 점만 팔린 화가가 죽은 후 “천재”가 된 경우랄까요. 비비안과 다른 점이 있다면, 고흐는 최소한 전시를 열려고 시도했다는 거예요. 하지만 비비안은 아예 공개할 의도 자체가 없었던 것 같거든요.
더 비슷한 케이스는 헨리 다거(Henry Darger, 1892-1973)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시카고에서 청소부로 일하며 평생 혼자 살면서, 몰래 15,000페이지의 소설과 300점의 그림을 그렸던 아웃사이더 아티스트죠. 그 역시 죽은 후 집주인이 우연히 발견해서 세상에 알려졌어요.
그런데 비비안의 경우는 더 복잡해요. 다거는 최소한 “완성작”을 남겼거든요. 하지만 비비안은 15만 장 중 7천 장만 인화하고, 4만 5천 장은 현상조차 안 했어요.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네거티브 아티스트”라는 새로운 개념
앤 마크스의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지적은 “비비안의 매체는 인화된 사진이 아니라 네거티브였다”는 거예요. 이건 정말 중요한 관점이라고 생각해요.
전통적으로 사진가는 “촬영 → 현상 → 인화 → 전시/배포”의 과정을 거치잖아요? 하지만 비비안은 “촬영 → 현상 → (종료)”에서 멈췄어요. 마치 화가가 스케치만 하고 유화는 그리지 않는 것처럼요. 이건 단순히 “귀찮아서” 또는 “돈이 없어서”였을까요? 아니면 그녀만의 예술적 철학이 있었던 걸까요?
롤라이플렉스와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시선”
비비안이 1952년부터 사용한 롤라이플렉스는 허리 높이에서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며 촬영하는 카메라예요. 하지만 실제로는 피사체를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효과를 만들어냈죠. 이는 당시 주류 거리 사진가들과는 완전히 다른 접근이었어요. 같은 시대 로버트 프랭크나 워커 에반스 같은 작가들은 주로 눈높이 시선으로 “민주적 관찰자” 포지션을 취했거든요. 하지만 비비안의 시선은 더 복잡해요. 아이의 시선으로 어른을 바라보기, 사회적 약자의 시선으로 권력을 바라보기. 이게 우연일까요, 의도일까요? ‘작가 노트’같은 게 남아있지 않으니, 우리로선 알 도리가 없습니다.
미술사적 위치: 어디에 둘 것인가?
현재 비비안 마이어는 대략 이런 범주로 분류되고 있어요:
- 스트리트 포토그래피: 로버트 프랭크, 헬렌 레빗, 리제테 모델과 같은 계보
- 아웃사이더 아트: 헨리 다거, 아돌프 뵐플리 같은 “발견된 천재들”
- 여성 사진가: 다이앤 아버스, 리제테 모델 등과의 비교
하지만 이 모든 범주가 뭔가 어색한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비비안은 “사진가가 되려고 한 적이 없기” 때문이에요.
작가성(Authorship)의 문제
여기서 근본적인 질문이 나와요. 작가의 의도 없이 “작품”이 성립할 수 있는가?
롤랑 바르트의 “작가의 죽음” 이론을 떠올려볼 수 있지만, 비비안의 경우는 좀 달라요. 바르트는 텍스트의 의미가 독자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했지만, 비비안은 애초에 “독자(관객)”를 상정하지 않았으니까요.
그렇다면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비비안 마이어의 작품”은 누구의 작품일까요? 비비안의 것일까요, 아니면 존 말루프의 큐레이션이 만들어낸 것일까요?
제도적 승인과 시장의 논리
비비안 마이어 현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시장의 역할이에요. 존 말루프가 2007년 경매에서 400달러에 산 네거티브가 지금은 수백만 달러 가치로 평가받고 있거든요.
이는 제프 쿤스나 데미안 허스트 같은 블록버스터 작가들과는 정반대의 케이스예요. 그들은 철저히 시장을 계산하고 브랜딩해서 성공했지만, 비비안은 시장과 완전히 무관하게 작업했다가 사후에 시장이 그녀를 “발견”한 거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정성(Authenticity)” 담론의 함정
앤 마크스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비비안의 사진에서 “진정성”을 찾으려고 해요. 계산되지 않았기 때문에 더 진실하다는… 그런 생각인 건데요. 하지만 이런 생각은 오히려 “순수 예술” 이데올로기의 함정일 수 있어요. 마치 “돈을 벌려고 하지 않은 예술이 더 순수하다”는 낭만적 믿음 말이에요.
정말 그럴까요? 비비안의 사진이 “좋은” 건, 그녀가 시장을 의식하지 않았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단순히 실력이 뛰어났기 때문일까요?
큐레이션의 권력
현재 우리가 보는 “비비안 마이어”는 사실 존 말루프의 편집 결과예요. 15만 장 중에서 뭘 선택하고, 어떤 순서로 보여주고, 어떤 내러티브를 만들지는 모두 말루프가 결정했거든요. 만약 다른 사람이 발견했다면? 다른 방식으로 큐레이션했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비비안 마이어”는 완전히 달랐을 수도 있어요.
이런 현상은 미술사에서 “발견”의 정치학을 보여줍니다. 피카소의 아프리카 조각 “발견”, 서구의 일본 우키요에 “발견” 등과 마찬가지로, 비비안 마이어의 “발견” 역시 발견자의 시각과 의도가 개입된 거죠.
딴지 걸기: 앤 마크스의 심리학적 접근, 괜찮은 걸까?
마크스가 비비안을 일종의 환자로 진단하고 사진 촬영을 “대처 메커니즘”으로 해석하는 건, 미술사적으로 매우 위험한 접근이에요. 왜냐면, 19세기 “천재와 광기” 담론의 현대적 변형이거든요. 반 고흐의 정신병, 잭슨 폴록의 알코올 중독처럼, 예술가를 “비정상적인 존재”로 타자화하는 거죠.
더 문제적인 건, 이런 접근이 작품 자체에 대한 미적 판단을 회피한다는 거예요. (저는 이게 정말 중요한 포인트라고 생각합니다.) “정신병 때문에 독특한 사진을 찍었다”는 식으로 설명하면, 정작 그 사진들이 왜 미적으로 뛰어난지는 설명하지 못하거든요.
결국 남는 질문들
비비안 마이어 현상이 우리에게 던지는 근본적 질문들:
작가의 의도 없이 “예술”이 성립할 수 있는가?
- 사후 발견된 작품의 저작권과 윤리적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 “아웃사이더 아트”라는 범주 자체가 주류 미술계의 우월감을 드러내는 건 아닌가?
- 우리는 정말 비비안의 “작품”을 보고 있는가, 아니면 우리 자신의 환상을 투영하고 있는가?
이런 질문들에 쉬운 답은 없을 거예요.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비비안 마이어는 우리가 읽어 볼 만한 이 책의 주제가 되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더 읽어보기
출간된 책
『Vivian Maier: A Photographer’s Life and Afterlife』 – Pamela Bannos (2017) Northwestern University 교수가 쓴 가장 학술적인 비비안 마이어 연구서. 마크스의 심리학적 접근과 달리 사진사적 맥락과 젠더 이슈에 집중. 특히 “여성 사진가로서의 비비안”과 “아웃사이더 아트의 문제점” 분석에 집중. 시카고 대학 출판부
『Vivian Maier: Street Photographer』 – John Maloof (2011)
비비안을 세상에 처음 알린 존 말루프의 대표 사진집. 1950-60년대 뉴욕과 시카고 거리 사진 중심. 발견자의 관점에서 본 “신비로운 천재” 서사가 여기서 시작됨(!). powerHouse Books
『Vivian Maier: Out of the Shadows』 – Richard Cahan & Michael Williams (2012) Jeff Goldstein 컬렉션을 바탕으로 한 또 다른 사진집. 말루프 컬렉션과는 다른 선택과 편집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선택의 정치” 이해에 도움될 듯.
영상 자료
『Finding Vivian Maier』(2013) – 존 말루프, 찰리 시스켈 감독 아카데미상 후보작. 비비안을 돌봤던 아이들과 고용주들의 증언으로 구성. “발견 서사”의 전형을 보여주지만, 동시에 윤리적 문제도 제기. 공식 사이트
BBC World Service – “Witness History: Vivian Maier Secret street photographer”(2025) 비비안과 관련된 사람들의 증언을 BBC 아카이브로 재구성한 다큐멘터리. 영상보다 더 내밀한 증언들이 담겨 있음. BBC 아이플레이어 (VPN 접속 필요)
논문 및 학술 자료
“Vivian Maier and Amateur Photography” – Lucy Mounfield, University of Nottingham (2021) 비비안을 “아마추어 사진가” 관점에서 분석한 박사논문. 전문가/아마추어 구분의 허구성과 사진 매체의 민주적 성격 탐구. 285페이지 분량의 본격적인 학술 연구. Nottingham ePrints
“Guide to the John Maloof Collection of Vivian Maier circa 1900-2010” 시카고 대학교 특별 컬렉션 아카이브. 비비안의 사진뿐만 아니라 개인 소장품, 편지, 녹음 테이프 등까지 포함한 방대한 자료. 시카고 대학 도서관
비판적 리뷰
“Keeping the Negative: On Ann Marks’ Vivian Maier Developed” – Dani Lamorte, Cleveland Review of Books (2022) 앤 마크스의 심리학적 접근에 대한 신랄한 비판. “비비안을 로르샤흐 테스트로 만들어버렸다”는 핵심 지적과 함께 페미니스트 관점에서의 반박. Cleveland Review of Books
“The Trouble With Writing About Vivian Maier” – The New Republic (2021) “원거리 진단”의 위험성과 비비안을 정신질환자로 축소시키는 문제점 지적. 미국 주요 문예지의 관점에서 본 비비안 마이어 담론 비판. The New Republic
온라인 자료
Vivian Maier 공식 웹사이트 존 말루프가 운영하는 공식 사이트. 대표작들과 전시 정보, 최신 연구 소식 등. 하지만 말루프의 관점에서 편집된 것임을 염두에 두고 봐야 함. vivianmaier.com
Howard Greenberg Gallery – Vivian Maier 뉴욕의 대표적인 사진 갤러리에서 제공하는 비비안 작품 아카이브. 작품의 시장 가치와 미술계 평가를 이해하는 데 도움. https://www.howardgreenberg.com/artists/vivian-maier
- Vivian Maier 전시 페이지 https://www.howardgreenberg.com/exhibitions/vivian-maier
- Vivian Maier 뷰잉룸 https://www.howardgreenberg.com/viewing-room/vivian-maier-F8t
세 가지 질문
1. 작가의 동의 없는 사후 공개, 윤리적으로 정당한가?
비비안은 생전에 단 한 번도 자신의 사진을 공개한 적이 없습니다. 심지어 대부분을 현상조차 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지금 우리는 그녀의 사적인 기록을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소비하고 있죠. 만약 여러분이 평생 숨겨둔 일기나 사진이 죽은 후 발견되어 전 세계에 공개된다면 어떨까요? 예술적 가치가 있다면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해도 괜찮은 걸까요?
2. “진짜 작가”가 되려면 반드시 작품을 공개해야 하나?
비비안은 15만 장을 찍고도 7천 장만 인화했습니다. 나머지는 네거티브 상태로 보관만 했어요. 이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공개하지 않은 작품도 ‘작품’인가요? 아니면 공개되는 순간 비로소 ‘작품’이 되는 건가요?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보는 ‘비비안 마이어의 작품’은 사실 존 말루프의 큐레이션 작품인 건 아닐까요?
3. 왜 우리는 “아웃사이더”의 예술에 열광하는가?
비비안 마이어, 헨리 다거, 반 고흐… 모두 주류 미술계 밖에서 혼자 작업하다가 사후에 ‘발견’된 작가들이에요. 우리는 왜 이런 ‘숨겨진 천재’ 서사에 열광할까요? 혹시 현재 미술계에 대한 불신이나 ‘진정성’에 대한 갈망 때문은 아닐까요? 그런데 이런 시각 자체가 “정상적인 미술계 vs 비정상적인 아웃사이더”라는 위계를 전제하는 건 아닐까요?
추가로 생각하고 이야기 나눠볼 것들:
- 앤 마크스의 심리학적 진단, 어디까지 받아들일 수 있나요?
- 비비안의 사진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작품은? 그 이유는?
- 만약 비비안이 남성이었다면 같은 방식으로 해석되었을까요?
독서노트(들)
“비비안 마이어에게 세상과 소통한 언어는 사진이었을 것이다. 그녀의 시각에는 사진이라는 열정이 가득하였기에 사회계급, 인종, 차별이라는 편견의 시선이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녀의 사진을 좋아하는 것 아닐까.”
– ㅈOO
“책 초반에 사진을 찍는 것은 피사체를 선택하는 행위라는 문장이 아직까지도 가장 뇌리에 남는다. 사진이야말로 세상을 가장 적극적으로 관찰하고, 세상과 가장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것이란 의견에 동의한다.”
– ㅁOO
• 그녀는 실력이 있을 뿐만 아니라 인생을 걸고 작품활동을 했지만 그녀가 넘어서지 못한 한계로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작품활동을 위해 쓸 시간을 아껴서 후원자를 얼마나 잘 확보하느냐가 자신을 알려줄 중개상을 얼마나 잘 찾느냐가 작가가 더 나은 경지로 나아가기 위한 능력일까?
– ㅇOO
다음으로 왜 작품을 인화하지 않았을까, 이 부분이 책을 읽는 내내 궁금하다 못해 답답했는데 그녀의 성장 환경과 정신적 강박증을 알고 나니 단번에 이해가 됐다. 그녀는 롤라이 플렉스 카메라의 구조적인 특징을 십분 활용하여 (다소 무례하게) 몰래, 그리고 과감하게 피사체를 촬영했다. 셔터를 몇 번 누르지 않고도 완벽한 타이밍을 잡을 정도로 그녀는 자신감이 있었다.
– ㄱOO
“왜 꼭 천재들의 경우는 생전에는 전혀 빛을 보지 못하다가 사후에 인정을 겪는 경우가 많을까? 비비안 마이어에게 사진은 어떤 의미였을까? 사회와 자신을 연결하는 고리이자 매개체가 아니었을까?”
– ㅇOO
“한영수는 전쟁의 상흔이 채 가시지 않은 도시 속에서도 희망과 세련된 질서를 포착했다. 반면 비비안 마이어는 경찰에 끌려가는 시민, 길 위의 노숙자, 시위대 같은 불편한 현실도 주목했다. 사진가의 사회적 배경과 생활 환경이 작품의 방향에 어떠한 영향을 주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 ㅈOO
“비비안의 사진은 고고학 유물처럼 발굴된 예술이다. 그것도 데모음원이 담긴 테이프가 아니라 불친절한 악보만 발견된 꼴이다.”
– ㅂOO
“자신의 불행했던 가정환경에서도 오빠와는 다르게 꿋꿋하게 본인의 삶을 사진으로 예술로 승화시킨 것에 대한 안도감과 그녀의 주변에 그녀를 드러내도 될 만큼의 그녀를 깊이 이해해주고 지지해주는 사람이 있었다면 더없이 좋았을 것 같은 안타까움이었다.”
– ㅎOO
“예술 작품을 만들어내는 이들도 인간이다 보니, 우리는 자연스럽게 작가의 삶에 돋보기를 들이댄다. 가정불화, 정신질환의 징조, 경제적 여건 등 직장동료였다면 굳이 들추지 않았을 디테일들까지 해부대 위에 올려놓고서야 비로소 만족한다.”
– ㄱOO
“미술이 뭔지 안다, 철학이 뭔지 안다, 돈이 싫다라고 하는 세 부류는 아마도 사기꾼이 확실하다는 삼십살의 결론”
– ㅂOO
“힘든 환경과 장애가 있음에도 후세에 그 천재성을 인정 받은 예술가라는 스토리를 이어가는게 읽으면서도 편안하지는 않았다. 힘드니깐 예술이고, 장애가 있으니깐 위대한 작품을 남긴다라는 불편한 교훈을 주는거 같은 느낌이 들었다.”
– ㅊOO
“비비안 마이어는 예술 작품이라고 주장하기 위해서도, 타인과 공유하기 위해서도 아닌 자기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사진을 찍었다. 그녀에게 중요했던 것은 타인의 반응(좋아요)가 아니라, 그 순간과 자신의 만남 그 자체였던 것이다.”
– ㅊOO
“문득 나의 삶은, 기억될 수 있을까. 십년후, 이십년뒤에 축적되어 기록될 나의 추구해온 바는 무엇인가?”
– ㅂOO
예술이 세상에 알려지는 데 있어 작품 자체만큼 중요한 것이 스토리텔링과 타이밍 그리고 마케팅이라는 사실도 새삼 느끼게 되었다. 오랫동안 숨겨져 있다가 창고경매에서 우연히 발견한 세상을 흔드는 예술작품이라니 사실 비비안 마이어가 아니더라도 흥미진진한 스토리인 것 같다. 진짜 예술이란 무엇인지, 알려지지 않은 재능이 어떻게 평가받게 되는지도 같이 생각해보게 만드는 책이었다.
– ㅊOO
이 책에서 제일 흥미로웠던 건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보다는(물론 매우 훌륭하지만) 그의 삶에 대한 관점, 예술가로서의 태도였다. 비비안 마이어는 불행한 경험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신의 영역을 사진을 통해서 찾았다고 생각한다.
– ㅈOO
이 책을 접하지 않았더라면 비비안은 내게 평생 사진을 찍었던 숨겨진 괴짜 예술가로 남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젠 예술가이기 전에 그저 사랑받고 싶었던 한 사람으로 기억에 남을 듯 싶다.
– ㄱO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