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아냥, [미술관에서 우리가 놓친 것들]

  • 저자: 윌 곰퍼츠 (Will Gompertz)
  • 역자: 주은정
  • 출판사: 알에이치코리아 (RHK)
  • 출간일: 2025년 11월 26일
  • 원제See What You’re Missing: 31 Ways Artists Notice the World – and How You Can Too
  • 분류: 예술/대중문화 > 예술일반 > 예술이야기

고은의 노트

〈현대 커미션: 엘 아나추이: Behind the Red Moon〉, 영국 테이트 미술관, 2023

“당신은 세상에 있지만, 세상을 알지 못한다.”
(엘 아나추이, 본문 중 197p)

이 문장은 내가 보고 있다고 믿어왔던 세계,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예술의 장면들이 사실은 얼마나 얕은 시선 위에 놓여 있었는지를 조용히 되묻는 말처럼 느껴진다. 몇 주 전, 미술관에서 〈다르게 보기〉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한 적이 있다. 하나의 작품 앞에 앉아 약 스무 명의 사람들과 한 시간을 보내며 작업과 작가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리였다. 질의 시간에 이런 질문이 나왔다.

“당신의 설명은 이 작품을 얼마나 ‘다르게 보게’ 하나요?”

나는 작품의 형식이나 딱딱한 정보 이전에, 작가가 놓여 있던 맥락과 그 안의 숨을 이야기로 이 작품을 새롭게 보고자 한다고 답했다. 다소 뻔한 임기응변에 가까운 대답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난 뒤, 그때의 답변은 나에게 또 다른 질문으로 되돌아왔다. 다른 사람의 ‘다르게 보기’를 과연 내가 이끌 수 있는 일일까? 내가 관객들을 위해 한 일은, 그저 한 시간 동안 한 작품 앞에 머무르게 한 것, 그 자체는 아니었을까.

이 책은 여러 ‘다르게 보기’의 마스터들, 즉 당대의 주요한 작가들의 작업을 따라가며 ‘보기’라는 행위가 어떻게 한 사람의 관점과 시대를 반영하는지 그리고 이를 지켜보는 이들을 얼마나 매혹시킬 수 있는지 말해준다.

데이비드 호크니는 그저 “더 오래도록 보라”고 권한다. 그는 서둘러 흘깃 보는 것으로는 눈앞의 것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고 말한다. 우리가 흔히 ‘아름다운 계절’이라 부르는 풍경 속에서 그는 억누를 수 없는 활기와 눈부신 색의 절정을 포착한다. 그러나 그 생동감은 단번에 얻어진 것이 아니다. 그가 들인 시간은 초월적인 아름다움으로 되돌아오며, 본다는 행위가 얼마나 적극적인 선택인지를 분명히 드러낸다. 컨스터블의 다음 문장은 이 태도를 더욱 단단하게 만든다. “우리는 이해하기 전에는 어떤 것도 올바르게 보지 못한다.” 여기서 보기는 감각의 문제가 아니라 이해의 문제이며, 세계와 관계 맺는 방식의 문제로 확장된다. 본다는 것은 이미 해석된 결과가 아니라, 이해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다.

또 칸딘스키는 이 과정을 전혀 다른 방향으로 밀어붙인다. 그는 바그너의 음악을 ‘듣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것을 ‘본다’. 그리고 그 보기를 회화로 옮기며 추상이라는 언어를 만들어냈다. 이때 시각은 더 이상 눈에만 속하지 않는다. 감각들은 서로를 침범하고, 예술은 하나의 감각에서 다른 감각으로 번역된다.

구사마에게 보기란 치유의 방식이다. 반복되는 점과 패턴, 집요하게 이어지는 시선은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장치이자 스스로를 지탱하기 위한 구조가 된다. 그녀의 보기는 외부 세계를 향하면서 동시에 자신 안으로 깊이 파고든다. 본다는 행위가 살아남기 위한 전략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바스키아의 화면 앞에 서면, 우리는 하나의 명확한 장면을 읽어내기 어렵다. 대신 파편화된 이미지와 기호들이 충돌한다. 이 책은 말한다. 우리가 ‘보는’ 모든 것은 의식과 무의식, 연결과 단절이 얽히며 끊임없이 변화하는 시각적 콜라주라고. 우리의 머릿속에서는 늘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고 있고, 바스키아는 그 혼란을 숨기지 않는다. 그는 세계를 자신만의 암호와 연산으로 다시 풀어낸다.

크리스토와 잔 클로드의 작업에 이르면, 보기는 하나의 윤리적 선택처럼 느껴진다. 그들은 예술의 목적을 이렇게 정의한다. 세계를 다르게 보게 하는 것, 새로운 것을 보여주거나 평범한 것을 새롭게 보게 하는 능력. 그들의 작업은 사물을 바꾸지 않지만, 우리가 그것을 인식하는 방식을 완전히 뒤흔든다.

그 밖에도 보기는 괴로운 기억과 경험을 끝까지 파고들어 회화와 조각으로 공식화하는 행위 그 자체라고 말하는 트레이시 에민, ‘볼 수 없는 것’을 보게 만드는 싸이 톰블리, 혼돈과 추함이라 불려온 것들 속에서 새로운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장 뒤뷔페 등 이들 모두에게 보기는 단순한 감상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를 다시 구성하는 방식이다.

다시, 엘 아나추이의 문장으로 돌아와본다. “당신은 세상에 있지만 세상을 알지 못한다.”란 어떤 가르침이라기보다 오히려 초대에 가까운 말인 것 같다. 더 오래 보라고, 더 다르게 보라고, 설명하기 전에 먼저 머무르라고 말하는 듯하다. 이 책을 덮고 다시 작품 앞에 선다면 섣부르게 이해하려 애쓰기 전에, 판단하기 전에, 그저 시간을 들여 천천히 바라본다면 어떨까? 어쩌면 ‘다르게 보기’란 누군가의 설명을 통해 얻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시선을 의심하는 데서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재용의 노트

윌 곰퍼츠(Will Gompertz, 1965~)는 영국 미술계의 기묘한 아이콘이다. 학력도, 미술사 학위도 없다. 15세 또는 16세에 학교를 중퇴했다는 사실이 여러 인터뷰에서 반복적으로 언급된다. 2014년 캠브리지 대학 학생지 Varsity와의 인터뷰에서도 그는 “예술은 나에게 항상 명확한 진로가 아니었다”고 고백한다. 그런 그가 테이트 갤러리 디렉터(2002~2009), BBC 예술 담당 편집장(2009~2021), 바비칸 센터 창조 디렉터(2021~2023), 그리고 현재 존 소안 박물관(Sir John Soane’s Museum) 관장(2024~현재)으로 이어지는 화려한 경력을 쌓았다는 것은 아이러니를 넘어선 어떤 증명인 것처럼 보인다. 비정통적 출발이 오히려 그의 강력한 무기가 된 건지도 모른다.

1990년, 곰퍼츠는 Shots Magazine을 창간하며 미술계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였다. 이 잡지는 YBA(Young British Artists) 시대의 열기 속에서 데미안 허스트, 트레이시 에민 같은 이들이 부상하던 1990년대 영국 미술계의 변화를 짚어냈다. 테이트에서는 7년간 Tate Media, Tate Online, Tate Etc 매거진을 비롯해 오랫동안 퍼포먼스 아트 축제/행사를 총괄했고, BBC에서는 11년간 최초의 예술 전담 편집장으로서 예술 정책과 자금 지원 문제를 집요하게 보도했다. 그의 베스트셀러 What Are You Looking At?(2012)과 Think Like an Artist(2015)[각각 『발칙한 현대미술사』 (알에이치코리아, 2014)와 『발칙한 예술가들』 (알에이치코리아, 2016/2021)로 번역 출간됨. 왠지 “발칙한”이 전매특허가 된 듯도…]는 대중에게 현대미술을 설명하는 새로운 언어를 제시했고, 그를 ‘예술의 대중화’를 상징하는 인물로 만들었다.

하지만 곰퍼츠에 대한 양가적 평가는 바로 이런 지점에서 시작됐다. 그는 (자기 할 일을 하고 있는) 비평가들에게 “포퓰리스트”라는 딱지를 달고 다닌다. 예술을 친절하게, 재미있게, 접근 가능하게 만드는 건 그의 강점인 동시에 한계다. See What You’re Missing(2023, 한국어판 『미술관에서 우리가 놓친 것들』, 2025)의 원제는 부제까지 포함하면 See What You’re Missing: 31 Ways Artists Notice the World — and How You Can Too이다.

흥미롭게도 “당신도 할 수 있다”는 그 낙관적 격려가 한국어판에서는 빠졌다. 아마도 번역 과정에서 부제가 너무 길다고 판단했거나, 혹은 그 친절함이 지나치게 교훈적으로 느껴졌을 수도 있다. 이런 누락이 은연 중에 드러내는 건 바로 곰퍼츠의 작업이 가진 본질적 특성이다. 보는 법을 가르치려는 욕망과 관객을 능동적 주체로 초대하려는 노력 사이의 긴장이랄까?

곰퍼츠를 비판해보자: 포퓰리즘의 미학과 빠진 맥락들

곰퍼츠의 글쓰기 방식은 명료하고 위트 있다. E.H.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를 현대판으로 업데이트하려는 야심을 품고 있다는 평가도 받는다. 하지만 비판도 만만치 않다. The Times 리뷰는 이 책이 “유로센트리즘(유럽 중심주의)” 문제를 지적하며, 31명의 작가 구성이 지나치게 서구 중심적이고 특정 시대(특히 20세기 이후)에 편중되어 있다고 꼬집는다. 실제로 동양인-한국인 독자 입장에서, 마지막 챕터는 좀 뜬금없게 느껴진다. (저만 그랬던 걸까요?)

실제로 책의 31개 챕터를 살펴보면 이런 구성이다:

이 책에서 다루는 31명의 예술가와 그들의 “보는 법”은 다음과 같다:

  1. 데이비드 호크니: 자연을 보기 (David Hockney: Seeing Nature)
  2. 존 컨스터블: 구름을 보기 (John Constable: Seeing Clouds)
  3. 프리다 칼로: 고통을 통해 보기 (Frida Kahlo: Seeing Through Pain)
  4. 바실리 칸딘스키: 음악을 보기 (Wassily Kandinsky: Seeing Music)
  5. 쿠사마 야요이: 치료로서의 보기 (Yayoi Kusama: Seeing as Therapy)
  6. 장 미셸 바스키아: 진짜를 보기 (Jean-Michel Basquiat: Seeing for Real)
  7. 렘브란트: 자신을 보기 (Rembrandt: Seeing Yourself)
  8. 크리스토와 장 클로드: 극적으로 보기 (Christo and Jeanne-Claude: Seeing Spectacularly)
  9. 카라 워커: 모호함을 보기 (Kara Walker: Seeing Ambiguity)
  10. 프라 안젤리코: 대안 현실을 보기 (Fra Angelico: Seeing an Alternative Reality)
  11. 엘 아나추이: 마음으로 보기 (El Anatsui: Seeing with Your Mind)
  12. 에드워드 호퍼: 고립을 보기 (Edward Hopper: Seeing Isolation)
  13.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극적으로 보기 (Artemisia Gentileschi: Seeing Dramatically)
  14. 애그니스 마틴: 감정을 보기 (Agnes Martin: Seeing Feelings)
  15. 제니퍼 패커: 없는 것을 보기 (Jennifer Packer: Seeing What’s Not There)
  16. 제임스 터렐: 빛을 보기 (James Turrell: Seeing Light)
  17. 앨리스 닐: 영혼을 보기 (Alice Neel: Seeing Souls)
  18. 폴 세잔: 두 눈으로 보기 (Paul Cézanne: Seeing with Both Eyes)
  19. 트레이시 에민: 친밀하게 보기 (Tracey Emin: Seeing Intimately)
  20. 사이 톰블리: 순환을 보기 (Cy Twombly: Seeing Cycles)
  21. 리네트 이아돔-보아키: 낯선 이들을 보기 (Lynette Yiadom-Boakye: Seeing Strangers)
  22. 이사무 노구치: 공간을 보기 (Isamu Noguchi: Seeing Space)
  23. 쇼치팔라 조각: 우리를 보기 (Xochipala Sculpture: Seeing Us)
  24. 폴라 레고: 환상적으로 보기 (Paula Rego: Seeing Fantastically)
  25. 장 바티스트 시메옹 샤르댕: 일상을 보기 (Jean-Baptiste-Siméon Chardin: Seeing Everyday Life)
  26. 힐마 아프 클린트: 보이지 않는 것을 보기 (Hilma af Klint: Seeing the Invisible)
  27. 에바 헤세: 부조리를 보기 (Eva Hesse: Seeing Absurdity)
  28. 조지아 오키프: 형태를 보기 (Georgia O’Keeffe: Seeing Shapes)
  29. 궈시(郭熙, Guo Xi): 조화를 보기 (Guo Xi: Seeing Harmony)
  30. 페테르 파울 루벤스: 정치적으로 보기 (Peter Paul Rubens: Seeing Politically)
  31. 장 뒤뷔페: 추함 속의 아름다움을 보기 (Jean Dubuffet: Seeing Beauty in Ugliness)

이 목록에선 몇 가지 패턴이 엿보인다.

시대 분포: 르네상스(프라 안젤리코, 렘브란트, 루벤스) 3명, 17~18세기(샤르댕) 1명, 19세기(컨스터블) 1명, 20세기 초반(세잔, 칸딘스키, 오키프, 힐마 아프 클린트) 4명, 20세기 중후반 이후(나머지 대다수) 약 21명. 현대 미술에 압도적으로 치우쳐 있고, 이건 그가 써왔던 책의 내용을 생각하면 이해할 만 하다.

지역 분포: 미국 출신이거나 미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작가가 압도적으로 많다(호퍼, 오키프, 노구치, 바스키아, 터렐, 앨리스 닐, 카라 워커, 제니퍼 패커 등). 유럽 작가들도 많지만(영국,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등), 비서구권은 극소수다. 쿠사마 야요이(일본), 과시(중국 송나라), 엘 아나추이(가나 출신, 나이지리아 활동), 쇼치팔라 조각(멕시코 선사시대) 정도. 한국, 동남아시아, 중동, 라틴 아메리카(프리다 칼로와 선사 조각 제외) 작가는 거의 없다고 해도 될 정도다.

이 편향은 곰퍼츠가 재직했던 기관들이 지닌 구조적 한계와 무관하지 않다. 테이트 갤러리는 영국 현대미술의 전당이지만, 동시에 영미권 중심의 컬렉션 정책으로 오랫동안 비판받아왔다. 2023년 테이트 브리튼의 재배치(rehang) 논란은 이 문제를 극명하게 보여줬다. 탈식민주의, 노예제, 인종 문제를 다루려 했지만, “토큰주의(tokenism)”와 “약한 작품 선정”으로 비판받았다. 곰퍼츠가 테이트 미디어 디렉터로 재직하던 2002~2009년은 바로 이 앵글로-아메리칸 중심주의가 공고했던 시기이기도 하다.

곰퍼츠가 BBC 예술 편집장으로 재직하던 2009~2021년, BBC는 예술 콘텐츠를 주류 채널(BBC One, Two)에서 틈새 채널인 BBC Four로 이동시키면서 “문화적 게토”를 만든다는 비판을 받았다. 2013년엔 주력 예술 프로그램 《The Review Show》가 BBC Two에서 BBC Four로 옮겨가면서 시청자의 80%를 잃은 경우도 있다. 곰퍼츠는 BBC 예술 편집장으로서 이 구조적 주변화의 한복판에 있었다. 그가 다룬 예술가들의 스펙트럼이 영미권에 집중된 것은, 그가 몸담은 제도의 시선을 반영한다. 런던과 뉴욕을 중심으로 한 대서양 이쪽과 저쪽의 미술 시장과 담론 말이다.

바비칸 센터는 상대적으로 글로벌 사우스와 아시아 예술가들에 대한 관심이 높다. 2024년 《The Imaginary Institution of India: Art 1975-1998》 전시는 인도 미술 30년을 조명했고, 이사무 노구치 전시에서는 “글로벌 아시아(Global Asias)”의 맥락을 탐색했다. 하지만 곰퍼츠가 바비칸에 있던 기간은 2021~2023년이었다. 즉, 이 책의 작가 선정은 바비칸의 다원적 프로그래밍보다는 테이트와 BBC 시절의 관성(영미권 중심, 시장 검증된 ‘안전한’ 작가들)을 더 많이 반영하는 듯 하다.

곰퍼츠의 31명 리스트는 개인의 취향이라기보다 제도적 시선의 내면화다. 그가 “누구를 봤는가”는 그가 “어디에 있었는가”와 분리될 수 없다. 테이트 갤러리의 벽에 걸린 작품들, BBC가 보도한 전시들, 런던과 뉴욕의 옥션 하우스에서 거래되는 작품들. 곰퍼츠는 그 안에서 “보는 법”을 배웠고, 그 시선을 우리에게 전달한다. 하지만 그 시선 밖에 있는 작가들은 여전히 “우리가 놓친 것들” 속에 남아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곰퍼츠의 책 제목이 가장 날카롭게 고발하는 것은 바로 저자 자신이 놓친(!) 것들이다.

젠더 분포: 여성 작가 10명(프리다 칼로, 쿠사마 야요이, 카라 워커,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애그니스 마틴, 제니퍼 패커, 앨리스 닐, 트레이시 에민, 리네트 이아돔-보아키, 폴라 레고, 힐마 아프 클린트, 에바 헤세, 조지아 오키프), 남성 작가 18명, 그리고 크리스토와 장 클로드 부부 1쌍, 익명의 쇼치팔라 조각 1건. 곰퍼츠는 분명 젠더 균형을 의식했다. 하지만 이 선택 자체가 “누가 빠졌는가”라는 질문을 더욱 날카롭게 만든다.

곰퍼츠를 칭찬해보자:

그럼에도, 곰퍼츠의 작업이 지닌 가치를 부정할 수는 없다.

첫째, 접근 가능성. 그는 미술사 학위 없이 미술계의 정점에 올랐고, 그래서인지 전문 용어로 무장한 엘리트주의를 극도로 경계한다. “미술은 어려운 게 아니라, 우리가 어렵게 만드는 것”이라는 그의 신념은 많은 사람들에게 예술과의 첫 만남을 선사했다. 천O경 멤버의 반응—”미술관에서 길을 잃는 사람들에게 유용한 가이드”라는 말이 이를 방증한다.

둘째, 위트와 명료함이다. 곰퍼츠의 글은 재미있다. 바스키아를 설명하며 그의 낙서 같은 그림 속에서 “의식과 무의식의 시각적 콜라주”를 읽어내고, 호크니의 나무 그림을 통해 “더 오래 보기”의 미덕을 설파하는 그의 서사는 독자를 사로잡는다. 박O훈 멤버의 평가, “컴필레이션 앨범처럼 취향껏 골라 듣는 재미”처럼 말이다.

셋째, 일관된 메시지다. 곰퍼츠는 31명의 작가를 통해 하나의 명제를 반복한다: 예술은 세상을 다르게 보는 방법이며, 우리 모두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 이 낙관주의는 다소 순진해 보일 수 있지만, 동시에 예술의 민주화라는 정치적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백O성 멤버의 독후감을 발췌하자면, “복잡한 논리 없이도 일관된 반응을 유발하는 것이 좋은 예술”이라는 말처럼.

좋은 출발점이지만, 좋은 종착점은 아닌

결론: 입문서의 역설

곰퍼츠의 『미술관에서 우리가 놓친 것들』은 입문서의 역설을 보여준다. (그리고 “미술아냥”을 위한 책 고르기의 어려움을 보여준다.) 입문서는 문턱을 낮추지만, 동시에 그 문턱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를 제한적으로만 보여준다. 곰퍼츠는 우리에게 예술을 “친구”로 소개하지만, 그 친구의 복잡한 가족사(식민주의, 자본주의, 가부장제, 인종주의 등)는 각주 정도로만 언급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시작점으로 읽어야 한다. 고은의 노트가 엘 아나추이를 인용하며 말했듯, “당신은 세상 속에 있지만, 세상을 알지 못한다.” 곰퍼츠는 우리에게 세상을 보는 31가지 방법을 제시하지만, 그 방법들이 형성된 세상 자체(권력, 제도, 시장)를 보는 법은 독자의 몫으로 남겨둔다. 김O헌 멤버의 질문(“‘보는 것’과 ‘보이는 것’의 차이, 그리고 예술가가 조건”)이 바로 이 지점을 건드린다. 곰퍼츠는 보는 법을 가르치지만, 누가 보여지고 누가 지워지는지에 대한 질문은 우리가 스스로 던져야 한다.

이 책을 읽는 가장 생산적인 방법은 아마도 곰퍼츠를 대화 상대로 삼는 것이다. 그가 선택한 31명의 작가 목록을 보며, “누가 빠졌는가?”를 묻고, “왜 이 작가인가?”를 추궁하고, 나만의 32번째, 33번째 챕터를 상상하는 것이 바로 그 방법이다. 조O영이 니체의 ‘운명애(amor fati)’를 빌려 호크니와 쿠사마를 재평가하고, 최O하가 바스키아의 고립과 애그니스 마틴의 평온함을 대비시키며, 임O빈이 한강의 윤슬 경험을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와 연결한 것처럼 말이다. 곰퍼츠의 책은 완결된 정답이 아니라, 질문을 촉발하는 촉매로 읽혀야 한다.

함께 생각해 볼 질문들

  1. “당신은 세상 속에 있지만, 세상을 알지 못한다” 
    엘 아나추이의 이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고은의 노트가 제안하듯, 이것은 미술관에서 작품 앞에 더 오래 머물고, 자신의 시선을 의심하라는 초대인가? 아니면 곰퍼츠식의 ’31가지 보는 법’을 배우라는 요구일까?
  2. 호크니의 “더 오래 보기”, 과연 가능한가? 
    호크니는 같은 나무를 반복해서 그리며 시간의 변화를 포착했다. 하지만 현대인에게 ‘더 오래 보기’는 사치다. 미술관은 빨리 돌아야 하고, SNS는 스크롤을 강요한다. 어떻게 하면 ‘천천히 보기’를 실천할 수 있을까?
  3. 컨스터블의 “이해한 후 보기”와 직관의 긴장 
    컨스터블은 구름의 과학을 공부한 후 그렸다. 지식이 보는 방식을 바꾼다. 하지만 너무 많은 지식은 오히려 순수한 시각적 경험을 방해하지 않는가? 곰퍼츠의 책은 어느 쪽에 서 있는가?
  4. 여성 작가와 “고통의 서사” 
    쿠사마(치유), 프리다 칼로(고통을 통해), 트레이시 에민(친밀하게), 아르테미시아(극적으로)—여성 예술가들에게 유독 고통, 생존, 치유의 서사가 따라붙는다. 조한영의 지적처럼, 이것은 여성 예술가를 이해하는 유일한 방식인가? 남성 작가들에게 ‘천재성’이 주어질 때, 여성 작가들에게는 왜 ‘고통’이 주어지는가?
  5. 바스키아의 “진짜를 보기”란 무엇인가? 
    바스키아의 그림은 의식과 무의식의 시각적 콜라주다. 하지만 함수연이 애도하듯, 그는 27세에 죽었다. 그의 ‘진짜’는 미완성이다. 우리는 그를 ‘비극적 천재’로만 소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의 작품을 1980년대 뉴욕의 인종 정치와 예술 시장 없이 이해할 수 있는가?
  6. 크리스토와 장 클로드: 일상의 낯설게 하기 
    하나의 팀으로 활동한 두 작가는 건물을 천으로 감싸고, 섬을 분홍색 천으로 둘렀다. 일상적인 것을 ‘극적으로’ 보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 ‘극적 보기’는 얼마나 지속 가능한가?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우리는 여전히 다르게 볼 수 있는가?
  7. 사이 트웜블리와 “보이지 않는 것을 보기” 
    트웜블리의 낙서 같은 그림은 무엇을 보여주는가? 순환? 시간? 기억? 고은의 노트가 지적하듯, 이것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기”다. 하지만 너무 추상적이어서, 우리는 무엇이든 투사할 수 있다. 이것은 자유인가, 혼란인가?
  8. 장 뒤뷔페: 추함 속의 아름다움 
    이O호 멤버가 충격받은 것처럼, 뒤뷔페는 “예술은 아름다워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부순다. 하지만 ‘추함’을 정의하는 것도 권력의 문제다. 정신병원 환자들의 그림에서 영감을 받은 아르 브뤼(Art Brut)는 해방인가, 착취인가?
  9. 31명 중 한 작품 앞에 오래 머문다면? 
    고은의 질문 – 충분한 시간과 편안한 의자가 주어진다면, 이 책의 어떤 작품 앞에 가장 오래 머물고 싶은가? 그리고 왜?
  10. 당신의 “보는 방식”은 무엇인가? 
    고은의 두 번째 질문 – 새해(또는 새로운 시작)를 맞아, 당신은 어떤 시선이나 보는 방식을 갖고 있거나 갖고 싶은가? 호크니의 “더 오래”? 컨스터블의 “이해한 후”? 바스키아의 “진짜”? 아니면 곰퍼츠의 책에 없는 32번째 방식?
  11. 32번째 챕터: 누가 빠졌는가? 
    김O헌 멤버의 질문처럼, 누가 ‘보일’ 자격을 얻는가? 곰퍼츠의 31명은 대부분 제도의 승인을 받은 작가들이다. 한국 작가를 추가한다면, 누가 좋을까? 동남아시아, 중동,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 작가를 추가한다면? 그들은 세상이 세상을 보는 방식은?
  12. 입문서의 역설: 가이드와 자율성 
    천O경 멤버의 고민처럼, 곰퍼츠는 너무 친절해서 독자 스스로 길을 찾을 여지를 주지 않는다. 박O훈이 말한 “컴필레이션 앨범”의 장점(취향껏 고르기)과 한계(전체 서사의 부재)를 어떻게 균형 잡을 것인가? 가이드 없이 미술관을 헤매는 경험도 필요하지 않을까?

멤버 독후감 발췌

박O훈: 컴필레이션 앨범으로 듣기

“이 책은 마치 컴필레이션 앨범 같다. 31곡이 각자의 색깔로 빛나지만,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서사는 없다. 그래서 오히려 좋다. 취향껏 골라 듣고, 건너뛰고, 다시 돌아올 수 있으니까. 칸딘스키의 공감각은 신비롭고, 바스키아의 상징은 혼란스럽지만, 둘 다 세상을 ‘다르게 본다’는 점에서는 같다. 문제는 내가 과연 그들처럼 볼 수 있느냐는 것. 곰퍼츠는 ‘당신도 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나는 여전히 확신이 서지 않는다.”

조O영: 니체의 운명애와 여성 예술가들

“호크니를 다시 보게 되었다. 그의 ‘더 오래 보기’는 단순한 관찰이 아니라 세계와의 관계 맺기다. 니체가 말한 운명애(amor fati)처럼, 세상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기 위해서는 먼저 제대로 봐야 한다. 하지만 쿠사마와 에민 같은 여성 예술가들에게는 유독 ‘고통’의 서사가 따라붙는다. 그들의 ‘보기’는 왜 항상 치유와 생존의 전략으로만 설명되는가? 남성 작가들에게는 ‘천재성’이, 여성 작가들에게는 ‘고통’이 주어지는 이 불균형이 불편하다.”

천O경: 미술관에서 길을 잃는 사람들을 위한 가이드

“나는 미술관에서 늘 길을 잃는다. 어디서 시작해야 할지, 무엇을 봐야 할지 모르겠다. 이 책은 그런 나 같은 사람에게 유용한 가이드다. 호크니의 나무 그림을 보며 ‘관찰’의 의미를 배웠다. 하지만 동시에 궁금하다. 가이드 없이 혼자 미술관을 헤매는 경험도 필요하지 않을까? 곰퍼츠는 너무 친절해서, 나 스스로 길을 찾을 여지를 주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

김O헌: ‘보는 것’과 ‘보이는 것’의 차이

“예술가의 조건은 무엇인가? 곰퍼츠는 ‘다르게 보는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보는 것’과 ‘보이는 것’의 차이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예술가는 세상을 다르게 보지만, 동시에 자신의 시선을 타인에게 ‘보이게’ 만드는 사람이다. 바스키아의 그림은 혼란스럽지만, 그 혼란을 통해 우리는 그가 본 세상을 엿볼 수 있다. 문제는 누구의 시선이 ‘보일’ 자격을 얻는가다. 곰퍼츠의 31명 중 대부분은 이미 제도의 승인을 받은 작가들이다.”

최O경: 총체적 ‘봄’의 경험

“카라 워커의 작품은 불편하다. 모호함은 단순한 미학적 선택이 아니라 정치적 전략이다. 제임스 터렐의 빛은 물리적 경험이면서 동시에 철학적 질문이다. ‘본다’는 것은 눈으로만 하는 게 아니다. 몸 전체로, 마음으로, 역사적 맥락 속에서 봐야 한다. 곰퍼츠는 이 총체성을 어느 정도 포착하지만, 종종 개인의 심리로 환원시키는 경향이 있다. 워커의 ‘모호함’은 미국의 노예제 역사 없이는 이해될 수 없다.”

최O하: 고립의 양면성—바스키아와 애그니스 마틴

“바스키아와 애그니스 마틴은 정반대다. 바스키아의 고립은 혼란이고 폭발이다. 마틴의 고립은 평온이고 명상이다. 둘 다 혼자였지만, 그 혼자임의 의미가 완전히 다르다. 나는 어느 쪽의 고립을 원하는가? 책을 읽으며 나 자신에게 계속 물었다. 예술은 고립 속에서 탄생하지만, 그 고립을 어떻게 견디고 변환시키느냐가 작가를 결정한다. 고은의 질문—’어떤 작품 앞에 오래 머물고 싶은가?’—에 대한 내 대답은 이 둘 사이를 오가는 것이다.”

임O빈: 한강의 윤슬과 아르테미시아

“한강에서 본 윤슬이 떠올랐다. 빛이 물에 부서지며 만드는 그 순간적 아름다움. 곰퍼츠를 읽으며 그 경험이 ‘보기’의 한 방식이었음을 깨달았다.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의 〈유디트〉는 카라바조의 그것과 다르다. 같은 장면, 다른 시선. 여성의 시선으로 본 폭력은 남성의 시선으로 본 폭력과 어떻게 다른가? 곰퍼츠는 이 차이를 지적하지만, 더 깊이 파고들지는 않는다. 나는 더 알고 싶다.”

이O호: 추함 속의 아름다움—장 뒤뷔페

“장 뒤뷔페의 ‘아르 브뤼(Art Brut)’는 충격이었다. 예술은 아름다워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완전히 부순다. 추악한 진실이 아름다운 거짓보다 낫다. 하지만 ‘추함’을 정의하는 것도 결국 권력의 문제다. 누가 무엇을 추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뒤뷔페의 작품은 정신병원 환자들의 그림에서 영감을 받았다. 이것은 해방인가, 착취인가? 고은이 인용한 엘 아나추이의 말처럼, 나는 세상 속에 있지만 여전히 세상을 모른다.”

이O연: 작가들의 트리비아와 균형 잡기

“컨스터블이 구름을 과학적으로 연구했다는 사실, 터렐이 파일럿이었다는 배경, 바스키아가 거리에서 시작했다는 스토리—이런 트리비아들이 재미있다. 하지만 동시에 위험하다. 이야기가 작품을 압도할 수 있으니까. 지식과 감각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잡을 것인가? 너무 많이 알면 순수한 시각적 경험이 방해받고, 너무 모르면 작품의 맥락을 놓친다.”

윤O준: AI 카메라, 컨스터블, 그리고 호크니의 수영장

“컨스터블의 빛을 보며 요즘 스마트폰 ‘AI 카메라’가 떠올랐다. AI는 우리가 보지 못하는 빛을 포착하고, 보정하고, ‘최적화’한다. 컨스터블이 구름을 이해하려 했던 것처럼, AI는 세상을 이해하려 한다. 차이는 무엇인가? 호크니의 〈A Bigger Splash〉를 보며 생각했다. 이 수영장에는 사람이 없다. 하지만 물보라는 누군가의 존재를 증언한다. 호크니는 이성애 규범에 도전했다. 그의 ‘보기’는 정치적이다. 호크니처럼 ‘더 오래 보기’를 실천하고 싶지만, 현대는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이O준: 가독성과 구사마 야요이

“무엇보다 이 책은 읽기 쉽다. 곰퍼츠의 장점은 복잡한 것을 단순하게 만드는 능력이다. 구사마 야요이의 성공 스토리는 감동적이다. 일본 사회에서 여성 예술가로 산다는 것, 정신질환과 싸우며 작업한다는 것. 하지만 이 서사가 너무 익숙하다는 것도 문제다. 우리는 구사마를 ‘고통을 이겨낸 영웅’으로만 소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고은이 말한 ‘치유로서의 보기’는 구사마에게는 생존 전략이었지만, 우리에게는 감동 포르노가 될 위험이 있다.”

백O성: ‘좋은 예술’의 정의

“좋은 예술이란 무엇인가? 복잡한 논리나 배경 지식 없이도 일관된 반응을 유발하는 것. 바스키아의 그림은 혼란스럽지만, 그 혼란 자체가 메시지다. 곰퍼츠는 이 단순함을 추구한다. 하지만 과연 모든 예술이 ‘쉽게’ 이해될 수 있는가? 이해의 어려움도 예술의 일부가 아닐까? 사이 톰블리의 ‘보이지 않는 것을 보기’처럼, 어떤 예술은 의도적으로 불명확하다.”

함O연: 바스키아의 젊은 죽음과 미완성의 ‘진짜’

“바스키아는 27세에 죽었다. 그가 더 오래 살았다면 어떤 작품을 만들었을까? 그의 ‘진짜를 보기’는 미완성이다. 곰퍼츠는 그의 독특한 방식을 설명하지만, 나는 그저 슬프다. 천재는 일찍 죽어야 한다는 신화가 여전히 유효한가? 바스키아를 ‘비극적 천재’로만 기억하는 것은 그를 또 다른 방식으로 착취하는 것 같다. 고은이 말한 ‘의식과 무의식의 시각적 콜라주’는 정확한 표현이지만, 나는 그의 삶 자체가 궁금하다. 작품이 아니라, 사람으로서의 바스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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