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아냥, 각자의 책을 읽고 모여 소개하기

  • 모임 날짜: 2024년 1월 7일 일요일
  • 모임 장소: 트레바리 안국 아지트

  • 저자: 각자의 선택
  • 출판사: 각자의 선택
  • 출간일: 각자의 선택
  • 얇고 작고 가벼운 책에서부터, 두껍고 크고 무거운 책까지

송고은의 노트

‘예술 서적 / Art Publication’  의 정의는 참 모호하구나. 이번 책을 선정하며 알게되었습니다. 도대체 뭘 읽으라는건가? 라고 여러분을 헷갈리게 해드렸다면 미안합니다. 하지만 결국 각자 꽤 맘에 드는 책을 찾으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원하는 작가의 회고록 (Monograph)이나 전시 도록(Exhibition publication)을 읽어보면 좋겠다는 건 즉흥적으로 떠오른 아이디어 였지만, 생각해 볼 수록 한 텀의 한 번 정도는 이렇게 각자가 원하는 책을 선택하고 읽고, 또 소유해보는 시간을 갖으면 참 좋을 것 같습니다. 

예술에 대한 에세이, 철학, 역사 혹은 업계에 대한 서술이 아닌, 예술/전시 작품을 더 자세히 드러내는 비평, 작품이미지 그리고 그 세계를 반영하려는 제본의 방식, 내지의 촉감, 손에 잡히는 책의 크기 등 출간물의 물질성을 많이 고민하며 만드는 것이 전시도록이자 작가의 회고록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제가 말한 ‘예술 서적’의 정의에 하나 포함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 책들의 등이 나란히 꽂혀있는 책장을 바라볼 때 항상 흐믓한 기분이 듭니다. ‘이건 벌써 10년 전에 산거잖아?’ ‘이 작가의 작품은 언제 봐도 참 좋아’   ‘그때 그 여행에서 이거 이고 지고 오느라 힘들었지, 그래도 참 잘 한일이야’… 작가의 세계가 오롯이 담겨있는 있을 수 있는 물질은 작품을 제외하곤, 책이 유일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감히 여러분께도 올해는 이런 예술 서적을 한 권씩을 컬렉션 해보시길 추천드려봅니다.      

그래서 함께 책에 대한 작업에 대한 시시콜콜한 후일담을 같이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도록이라 불리우는 전시 출판물은 단순한 기록을 넘어서 작업/기획의 일부가 되기도 하고, 전시를 새롭게 혹은 다양하게 바라보는 방식의 매개체가 되기도 한다. 어쩌면 휘발되어 버리는 전시를 끝까지 붙잡고 있는 것이 전시 출판물일 수도 있다.” 

WESS 전시후도록 행사 전경, 2023(나선도서관)

박재용의 노트

무엇이 ‘미술책’이고, 어디까지를 ‘미술책’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저의 서재를 보면, 전시 도록만큼이나 ‘대게 그림이 없는 책’이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전시 공간에서 다시 기억하고 싶은 기억을 한 전시의 경우, 대게 전시장 전경을 담고 있는 전시 도록을 사려고 노력합니다. 그게 없다면, 아쉽지만 도서관에 가서 보겠다고 다짐하고 구매하지 않을 때가 더 많지요.

여전히 공사 중인, 2,500여 권의 미술(예술) 서적 아카이브/라이브러리인 ‘서울리딩룸’ 이전을 준비하면서 90여 개의 상자에 동료들과 함께 책을 넣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수가 작다고는 할 수 없는 책을 싸면서, 많은 책이 이미지가 아닌 텍스트 위주라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그림이 많은 미술책을 좋아하지 않는 걸까요? 그보다, 이른바 망막적(retinal) 방식으로 미술을 접하는 건 실물로 보기를 선호하며 그 전후 단계에서는 보다 두뇌적(cerebral)인 것을 선호하는 걸까요? 서울리딩룸 서가를 이루는 책을 보면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다소 그렇다’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번 달에 읽기 시작한 미술책(들)에서도 그런 면모가 엿보이거든요.

사진 속 쌓여 있는 책/인쇄물을 위에서부터 일람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페미니스트 라이프스타일 – 김현미 지음 (서울: 반비, 2023)
  • 좋은 기분: 일과 삶을 돌보는 태도에 대하여 – 박정수 지음 (서울: 북스톤, 2024)
  • 도서관 환상들 – 아나소피 스프링어, 에티엔 튀르팽 지음, 김이재 옮김 (서울: 만일, 2021)
  • 짬뽕: 백지숙의 문화읽기 – 백지숙 지음 (서울: 푸른미디어, 1997)
  • 눈이 보이지 않는 친구와 예술을 보러 가다 – 가와구치 아리오 지음, 김영현 옮김 (서울: 다다서재, 2023)
  • Cyberfeminism Index – Mindy Seu 엮음 (Los Angeles: Inventory Press, 2022)
  • 뉴스페이퍼 제4호 (서울: 뉴스페이퍼, 2023)
  • School: A Recent History of Self-Organized Art Education – Sam Thorne 엮음 (London: Sternberg Press, 2017)

명시적으로도 ‘미술책’이 아닌 첫 두 권을 제외하고, 나머지 책들을 위한 변을 한 번 써봅니다.

  1. 도서관 환상들

출판사의 책 소개만 읽어도, 상반기에 걸쳐 포장을 뜯고 인덱싱 해야 할 엄청난 수의 책 박스를 쌓아둔 채 점점 늘어만 가는 공사비를 써가며 아카이브/라이브러리를 구축 중인 제가 읽어야만 하는 책입니다.

『도서관의 환상들』은 도서관을 ‘큐레이팅’이라는 측면에서 논한다. 견고한 조직체로 여겨지지만, 도서관은 차라리 제멋대로 구성된 책들이 예기치 못하게 상호 접속하는 예측 불가능한 공간이다.

사실 이 책은 발매되자마자 냉큼 구해서 읽었어야 하지만, 이제서야 읽기를 시작한 책입니다. 급하면 도움을 구하게 된다고들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1. 짬뽕

이것이 왜 ‘미술책’인지 알기 위해서는 1997년 출간된 이 책의 저자가 누구인지를 잠시 알아보아야 합니다. 저자는 바로 ‘백지숙’으로, 최근까지 서울시립미술관 관장을 역임한 윗세대의 큐레이터입니다. 90년대에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큐레이터’ 중 많은 사람이 문학이나 문화 이론, 평론가로 먼저 경력을 시작했다는 점은 2024년 현재 미술계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의 면면에 비춰보았을 때 꽤나 흥미로운 지점입니다. 특히나 저자인 백지숙이 2018년에 [본 것을 걸어가듯이]라는 제목으로 90년대 말부터 거의 30년에 이르는 미술 저작을 모은 비평집을 출간했다는 점에서 더 그렇습니다.

  1. 눈이 보이지 않는 친구와 예술을 보러 가다

언젠가 [미술아냥]에서 읽어볼까 싶어 한 번 구매해 본 책입니다. 이 모임에서 읽을 책을 고르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미술책’으로 분류된 많은 서적이 너무 표면적인 내용만 다루거나, 굳이 우리가 지금 이 시점에 읽어야 할까 싶은 내용이거나, 전문가(관련 전공자, 업계종사자) 대상으로 쓰인 책이기에 모임에서 토론의 대상으로 삼기에 적절하지 않습니다. 트레바리 모임에 적절한 책은 어쩌면 ‘적당한 거리두기’를 통해 ‘생각을 할 공간’을 만들어 주는 게 더 좋거든요.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미술을 너무 직접적 대상으로만 다루지 않아서 좋습니다. ‘눈이 보이지 않는 친구’를 매개로 미술에 접근하기 때문이지요. 인상적이라서 메모해둔 한 구절 공유:

그렇게 생각해보니, 적당히 무지한 상태란 좋은 것이었다. 선입견 없이 무심하게 그저 작품과 마주할 수 있으니까. 마치 가이드북 없이 다니는 나 홀로 여행처럼.

– 34쪽
  1. Cyberfeminism Index

이 책의 구성은 단순합니다. 짧은 소개글 몇 개가 책 서두에 있고, 나머지는 모두 ‘인덱스’ 입니다. 그리고 이 색인은 1990년대부터 30년 가량 전 세계에서 이뤄진 ‘사이버페미니즘’ 활동을 담고 있습니다. 이게 대체 왜 ‘미술책’일까요?

사실 이 책이 탄생하게된 배경에는 호주에서 활동하는 여성 작가 콜렉티브인 VNS Matrix의 활동이 있었습니다. 지극히 가부장적이고 이분법적인 (게다가 ‘예쁘고 몸매 좋은 사이보그’가 자주 등장하던) 8-90년대 sci-fi 씬의 문화에 반발한 이 콜렉티브는 “사이버페미니즘 매니페스토”를 작성했고, 이 매니페스토는 유선전화로 연결된 인터넷이나 팩스 등을 통해 전 세계에서 점조직처럼 퍼져 나갔습니다.

그로부터 30년 가량이 지난 시점에서 Mindy Seu는 https://cyberfeminismindex.com 웹사이트를 만들어 업데이트를 시작했고, 웹으로 구성된 인덱스는 물리적 실체를 띤 책으로도 구현되었습니다.

  1. 뉴스페이퍼 제4호

이 ‘신문’은 일 년에 한 번 발행되는 간행물입니다. 많은 ‘아티스트 퍼블리케이션’이 그런 것처럼 책이나 신문의 형태를 차용하되 추적 가능한 등록정보가 없는 게 아니라 실제로 ISSN을 등록한 어엿한 ‘정기 간행물’입니다. 이 책이 흥미로운 건, 이렇게 ‘신문’의 형태를 띤 예술가/미술가 주도의 출판물이 완전히 새로운 아이디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처럼 새롭지 않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만든 이 출판물에 어떤 내용이 담기는지일 것입니다. 이를테면 제가 이 [뉴스페이퍼]를 일 년에 한 번 후원하는 마음으로 구매하는 것 외에 ‘정기구독’중인 또 다른 ‘신문’도 있거든요. [Arts of the Working Class]라는, 베를린에서 발행되는 신문입니다.

  • [뉴스페이퍼] (2019년부터 서울에서 연간 발행, 2023년에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기금을 받아 발행함) https://www.instagram.com/hello.newspaper.bye/
  • [Arts of the Working Class] (2020년부터 베를린에서 두 달에 한 번씩 발행, 구독과 후원 및 광고로 운영)
  1. School: A Recent History of Self-Organized Art Education

올해 중 한국어판 출간을 목표로 번역을 시작한 책입니다. 이 책은 2000년대 이후 전 세계에서 진행 및 시도된 대안적 교육 활동을 아우릅니다. 챕터 제목 가운데 흥미로운 것들이 눈에 띠는데요:

  • “(미술 학교) 학생들의 부채와 미술 석사(MFA) 산업 복합체”
  • “최고의 미술 학교는 따뜻한 방이다”

등이지요. 마침 저는 올해 몇 명의 다른 동료와 함께 “큐레이팅 스쿨 서울 제1학기”를 준비 중이기도 합니다. 10년 전(아니 이제는 11년 전)인 2013년 겨울 진행한 “큐레이팅 스쿨 서울 제0학기”를 10년 만에 이어서 진행하려는 것인데요, 그러한 시점에 번역 작업을 하기에 시의적절한 책이 아닐까 합니다.

참고로 1월 24일(수) 저녁 7시 30분에, 이 책을 함께 작업 중인 출판사의 사무실에서 책의 인트로덕션 챕터와 제1장 번역 초고를 함께 읽고 코멘트하는 “박재용 구워 삶기” 행사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책의 번역이 다 끝날 때까지 이 “구워 삶기” 행사는 계속될 예정이에요.

생각할 거리

  • 내가 생각하는 ‘미술책’의 전형 혹은 전형적인 ‘미술책’은 어떤 모습, 어떤 내용인가요?
  • 내가 가지고 있는 ‘미술책’은 어떤 것들이죠? 오늘 가져온 미술책을 소개해주시겠어요?
  • ‘현대미술’을 다루는 트레바리의 이 모임에서, 우리는 (극단적으로 한계를 밀어부친다면) 어떤 책까지 읽어 볼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