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아냥, [내가 그림이 되다: 루시안 프로이드의 초상화]

  • 모임 날짜: 2024년 3월 2일 일요일
  • 모임 장소: 트레바리 안국 아지트
  • “미술아냥” 21번째 시즌 / 82번째 책

  • 제목: 내가 그림이 되다: 루시안 프로이드의 초상화 (원제: Man with a Blue Scarf: On Sitting for a Portrait by Lucian Freud)
  • 옮긴이: 주은정
  • 저자: 마틴 게이퍼드
  • 출판사: 디자인하우스
  • 출판 연도:  2013년 10월 30일
  • 분량, 무게, 크기: 248쪽 | 602g | 152*229*20mm

오늘의 진행 순서

  • (두 번째 만남이니 만큼 다시 한 번) 각자의 짧은 소개와 근황 업데이트. 미술 이야기를 곁들이면 금상 첨화.
  • 발제문(송고은, 박재용의 노트) 읽기.
  • 함께 생각할 질문 나누기.
  • 책 전반에 관해 의견 교환.
  • 각자의 노트를 함께 읽기. (자기가 쓴 것 말고, 남의 것을 읽도록 클럽장과 파트너가 가이드…?)
  • 모임 회고 코멘트 나누기.
  • ‘번개 추진 위원’ 꼽고, 기록을 위한 단체 사진 남겨보기.

[A Painter’s Progress: A Portrait of Lucian Freud](2014) 표지. 거의 20년간 작가의 어시스턴트였던 David Dawson이 남긴 기록 사진집이다.
책 내지
David Dawson이 남긴 작가 말년의 영상

송고은의 노트

루시안 프로이드는 우리가 떠올릴 수 있는 가장 원초적인 모습의 예술가가 아닐까? 이번 책을 읽으며, 그의 작업실 풍경이 더 궁금해져 짧은 다큐멘터리를 찾아봤다. 내가 알고 있는 그의 모습보다 훨씬 젊은 시절의 루시안이었다. 특유의 구부정한듯 단단해보이는 신체와 진득한 물감 덩어리들이 사방에 퍼져있는 그의 공간은 내가 짐작했던 것보다 꽤 오래전부터 차곡차곡 지어져 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는 보통 친한 지인이나 가족 혹은 동물을 그려왔는데 그 대상이 무엇이든, 꾸며낸 표정과 수사를 벌거벗겨버리는 초상작업으로 유명하다.  

밝은 노란빛의 행복한 노화가, 호크니의 얼굴이 프로이드의 손을 거치면서 어딘가 모를 텅빈 어둠이 드리워져보이는건 내 기분 탓인가? 

Lucian Freud (right) and David Hockney (left), photographed by Freud’s assistant David Dawson in 2002 

조각의 과정을 닮은 그의 작품은 실제 팔레트에 나이프를 짓이기며, 캔버스에 올려질 살점들을 섞어 붙여내듯 작업한다. 오롯이 작가와 모델 사이에 벌어지는 일대일의 관계는 다른이에게는 영원히 허락될수 없는 순간이지만, 다행히도 마틴 게이퍼드를 통해 들여다 볼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많은 사람들이 이 책에 끌리는 중요한 이유일 것이다. 

2003년 11월 28일부터 다음해 7월 4일까지 마틴 게이퍼드는 작품의 모델을 서고 또 자신의 초상화를 산 컬렉터를 만나는 일련의 과정을 기록했다. 생면부지의 남의 얼굴을 우리 집에 건다는 건 어떤 의도일까? 

아마도 그림 속 인물 자체를 기린다기 보다는, 타인의 모습에서 발견된 내 자신 그리고 조금 거창하게는 모든 인류의 어떤 공통된 분모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은 아닐까. 루시안 프로이드가 그린 모든 작품들에서는 모델과 우리 스스로를 겹쳐보이게 하는 작은 조각들을 찾아볼 수 있다. 그것이 루시안의 작품이 특별한 감상을 일으키는 부분일 것이다. 멍때리고 있는 나를 누군가 몰래찍어 보내 준 사진 속 내 모습은 너무 낯설다. 하지만 그 순간이야말로 어쩌면 스스로는 절대 똑바로 마주하지 못할 내 일부가 감춰져 있을지 모른다. 그런 것들을 포착해내는 것이 예술이 하는 일일것이다. 이래서 회화는 절대 종말을 맞이할 수가 없다.

영문 위키백과 “Benefits Supervisor Sleeping”페이지 발췌 (2024년 3월 3일 접속)
Benefits Supervisor Sleeping is a 1995 oil on canvas painting by the British artist Lucian Freud depicting a naked woman lying on a couch. It is a portrait of Sue Tilley, a Jobcentre supervisor.[1]
Tilley is the author of a biography of the Australian performer Leigh Bowery titled Leigh Bowery, The Life and Times of an Icon. Tilley was introduced to Freud by Bowery, who was already modelling for him. Freud painted a number of large portraits of her around the period 1994–96, and came to call her “Big Sue”. He said of her body: “It’s flesh without muscle and it has developed a different kind of texture through bearing such a weight-bearing thing.”[2]
The painting held the world record for the highest price paid for a painting by a living artist when it was sold by Guy Naggar[3] for US$33.6 million (£17.2 million)[4] at Christie’s in New York City in May 2008 to Roman Abramovich.[5]

박재용의 노트

루시언 프로이드 혹은 루치안 프로이트. 1922년 12월 8일 베를린에서 태어나 2011년 7월 20일 런던에서 사망. 이른바 예술성과 상업성을 두루 갖춘 예술가로 평가 받은 그는 세상을 떠난지 10년이 지난 지금도 미술 시장에서 새로운 기록을 세우는 중이다. 예컨대 2022년 11월 9일 크리스티 경매에서 낙찰된 작품 [Large Interior W11]은 8천 6백 26만 5,000달러로 그의 작품을 통틀어 최고가를 기록했다.

Large Interior, W11 (after Watteau) (1981)

프로이드가 명성을 얻게 된 건 1951년 [Festival of Britain] 전시에서 영국 문화예술위원회상Arts Council Prize를 수상하면서였다. 1851년의 만국박람회 100주년을 기념해 열린 이 전시는 런던을 시작으로 영국 전역에서 개최되었고, 수백만 명의 관람객이 행사장을 찾았다.

“Dome of Discovery” 앞에 늘어선 인파 (1951)

몇 년 뒤 열린 1954년 베니스 비엔날레는 그를 국제 무대에 알리는 또 다른 계기가 되었다. 프란시스 베이컨을 포함해 총 14명의 예술가가 참여한 그 해 영국관British Pavilion 전시에서 화가는 세 명이었다: 프란시스 베이컨, 루시언 프로이드, 벤 니콜슨. (베이컨과 프로이드는 평생 서로의 작업에 대해 비난을 주고받은, 이른바 프레너미frenemy 관계를 유지했다.)

Hotel Bedroom (1954)
베니스 비엔날레 출품을 위해 영국문화예술위원회과 오간 편지에서 프로이드는 “열흘 안에 완성될 것”을 강조하며, 작품 운송을 할 수 있을만큼 그림이 말랐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새로운 작품을 선보이고 싶은 마음이 컸음을 유추할 수 있는 부분이다. (더불어, 손바닥 보다 작은 흑백 사진으로 작품에 관해 소통하며 전시를 기획하던 그 당시의 여건을 상상해 볼 수도 있다.)

예술가로서의 삶은 어떤 것일까? [내가 그림이 되다: 루시안 프로이드의 초상화]의 원제는 [Man with a Blue Scarf: On Sitting for a Portrait by Lucian Freud]다. 직역하면, “파란 스카프를 한 남자: 루시언 프로이트의 초상화를 위해 앉는다는 것에 관하여” 쯤 될테다. 독서노트를 쓰기 위해 준비하다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는 슬하에 열 네 명의 자녀를 두었다고 ‘인정acknoledge’했다. 그 중 두 사람은 첫 번째 결혼에서 낳은 아이들이고, 나머지 열 두 명은 ‘이런저런 관계’에서 태어났다. (이 사실을 언급함으로써 그의 흠결을 논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 나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그의 ‘왕성함’이 말해주는 바가 있음을 나누고자 함이다.)

Portrait of the Hound, 2011. Oil on canvas, 62 3/16 × 54 5/16 in. (158 × 138 cm). Private Collection © Lucian Freud Archive / Bridgeman Images / photograph courtesy Lenz & Staehelin, Zurich

미술 평론가art critic 마틴 게이퍼드Martin Gayford가 쓴 이 책은 예술가의 일대기biography라기보다, 그의 작업 과정에 작가writer가 직접 들어가 그 일부가 되어본다는 점에서 꽤 특별하다고 볼 수 있다. 20세기 초반에 유대인으로 태어나 나치의 핍박을 피해 영국으로 이주했고, 많은 여성과 사랑을 나누고 혼외자로 자식을 두기도 했으나 생전에는 비밀리에 오랜 시간 열정적인 동성 연인들을 두기도 한 프로이드. 동시에, 20세기 중반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펼치며 백인이자 성별상 남성이기도 한 프로이드를 지금 이곳의 우리는 어떤 시각으로 볼 수 있을까.

Three Studies of Lucian Freud (1969)
2013 Estate of Francis Bacon/Artists Rights Society (ARS), New York/DACS, London
2013년 소더비 경매에서 1억 4천 2백 4십만 달러에 낙찰되었다.

함께 생각해 볼 것들

  1. 그림을 요청할 수 있다면: 당신이 그리고 싶은 혹은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화가가 그려주길 원하는 대상이 있나요?
  2. 그림을 넘어서: 예산을 비롯해 그 어떤 제약도 없다면, 심지어 장르를 불문하고 시간을 거슬러서 과거의 예술가마저 소환할 수 있다면, 어떤 예술가에게 어떤 작품을 제작 의뢰commission하고 싶나요?
  3. 예술가로서의 삶은… 어떤 것일까요? 혹은, 어떤 것이어야 할까요?

독서노트

초상화가의 작업은 관상을 닮았다.
진짜 관상쟁이는 한눈에 사람을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그와 한달정도 생활하면서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파악한다고 들었다.

– ㅇOO

“초상화 탄생의 과정을 언어로 표현하다”

책에 대한 전체적인 소감을 간단히 표현하자면 시나 문학작품, 음악, 뮤지컬을 그림이나 영화로 옮겨서 시각적으로 감각을 극대화해보는 방식은 그럴 수 있겠다 싶었는데 본 도서는 그 반대의 느낌을 주었다. 초상화를 그리는 상호 주관적 상황의 과정을 자세히 인지적으로 언어화해 주고 있다.

– ㄱOO

그렇다면, 개성을 표현하고자 하는 화가가 그린 초상화는 ‘누구를 그렸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인물이라는 피사체를 가지고 작가가 무엇을 표현하고 싶었는지가 중요할 것이다.

(중략)

이 책이 쓰여질 때, 프로이트는 이미 고령의 거물 화가였다. 그가 어떻게 명성을 얻었는지 궁금하다. 누가 왜, 처음 그가 그린 타인의 초상화를 보고, 최고의 작품이라고 말했을까?

그 그림의 아름다움과 역동성 때문에? 아니면 꾸미지 않은 나체를 그린 그 용기 때문에? 누군가 그가 그린 초상화를 보고 감동을 받았다는 것은 그의 진지함과 공들인 기교가 통했다는 뜻도 된다.

– ㄱOO

“After serving in the British Navy during World War II, he began to pursue his career as an artist full time. Freud established a formidable reputation after winning a prize at the Festival of Britain in 1951 for his Interior at Paddington, and reached international renown for his work at the Venice Biennale in 1954.” – Lucian Freud Biography on artnet.com

Interior at Paddington (1951)
Copyright Lucian Freud Archive/Bridgeman Art Library

“가까이서 본 화가의 모습”

처음 이 책을 읽으면서 작가의 구성이 독특하다 느꼈습니다. 직접 모델을 하며 작가의 모습을 일기처럼 기록했다고 하니 어쩌면 이보다 더 가깝게 화가를 느끼면서 글을 쓸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다보니 그저 가까운 이웃의 일상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 OㅈO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모델을 만족시키기 작품이 아닌 그가 만족하기 위한 작품인 것이다. 모델이 화가를 고르는 게 아닌 내가 모델을 고른다는 점에서도 그의 작품은 온전히 프로이드가 주체이다. 책에서 펼쳐지는 스토리와 작품들에서 그의 예술가로서의 소신과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 OㅇO

이번에 선정된 책은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 대한 일기였습니다. (중략) 마지막에 작품들이 구매되어 구매자 집에 걸렸을 때 작가는 그들이 나의 또다른 자아를 소유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나의 초상화가 타인의 집에 걸렸을 때 그것은 그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갔을까. 나의 자아를 소유한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궁금했습니다.

– OㅅO

최대한 집중을 놓지 않고 프로이트의 그림과, 책에 나오는 그의 생활 양식. 취향. 가치관 등을 함께 바라보려고 시도했다. 특히 글쓴이는 프로이트의 진정성에 대한 왕성한 욕망에 대해 여러 차례 강조하는데, 미술에서 솔직함 또는 진정성이 특정 양식으로 귀결될 수 있는가, 사물을 과장하거나 비례를 망가뜨린다고 해서 대상과 멀어지는가에 대한 의문도 생기곤 했다. 물론 그의 세분화된 취향, 어떤 화가의 이 그림은 좋아하고, 저 그림은 싫어하는 식의 취향에 대한 나의 이해가 모자라서 그런 것일수도 있겠다.

– OㅇO

우선 책을 읽고 느낀점은 복잡하다…작가의 마음이 어디로 향할지 알 수 없어 작품들이 늘 완성되기까지 시간이 걸리고 내가 현시대에 보고 있는 작가들의 작품도 이럴까 싶다. 하지만 공통적으로 작가들에게서 느낀 점은 쉴틈없이 끊임없이 한시도 놓지 않고 작업을 진행한다는 점이다. 이들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을 알았다면 좋았을텐데 내가 이해력이 부족한걸까 책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모르겠다.

– OBO

“메세지 그 자체로서의 메신저, 초상”

조지아에서 내가 자주 가던 커피숍에 Gary Pound라는 지역 화가가 그린 초상화가 여럿 걸려있었다. 그 그림들을 보면서 나도 그에게 돈을 주고 내 모습을 그려달라고 부탁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내가 초상화로 그려진다면, 나는 어떤 모습을 기대하게 될까? (중략)

루시안 프로이드가 내 모습을 그려준다면 나는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게 될까? 그의 눈에 비친 나의 모습은 다만 나의 현재 외관이 아니라 나의 심리상태가 반영될 것이다. 

– 최도하 (파트너)

“분석하여 드러낸다는 일”

책은 프로이드 작가에 의해 그림이 된 저자의 시점에서 쓰였다. (중략) 결국 만들고 쓰는 사람인 ‘작가’는 객체를 그리고 써도, 자신의 모습을 그려나간다는 것인데 만약 그림을 그려달라고 부탁하기 전이나 모델이 되어달라며 제안하기 전에 이 깨달음을 알았다면, 이 작업이 시작될 수 있었을까.

– OOㅇ